1970년 3월22일.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서 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바다에서 용을 타고 올라가는 꿈을 꾸고는 깨어났다.

　이 아이의 성장은 지극히 평범했다. 여느 시골아이들처럼 시골길을 걸어서 혹은 뜀박질로 학교를 오가는 게 다였다. 초등학교 때인가. 어느날 아이의 어머니는 어느 점집을 찾아 아이의 사주를 봤다. 그곳에서 "이름을 크게 날릴 아이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와 아이는 그런 점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시골 아이가 어떻게 이름을 드높인다는 말인가.

　시간이 흘러 그가 태어난 지 만 22년째인 1992년. 이 아이는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사람이 됐다. 황영조. 그 아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며 금메달을 획득한 마라토너다.

　중학교 때 사이클, 고등학교 때 중거리 달리기가 주종목 선수였던 황영조가 우리에게 처음 나타난 것은 1987년 일본 사이타마현 지시부시 10㎞ 단축마라톤. 이 대회에서 그는 대회신기록을 기록했다. 2년 후인 1989년에는 일본 요미우리마라톤에서 10㎞ 단축마라톤에 출전해 한국 고교 최고기록을 수립했다.

　재미있는 것은 91년 동아마라톤대회 출전에서다. 그는 원래 이창운 선수의 페이스메이커였다. 페이스메이커라면 주 선수를 돕다가 나중에 슬쩍 빠지는 것이 임무다. 그런데 그는 골인지점까지 이창운 선수와 똑같이 가다가 얼떨결에 동시에 골인까지 한 것.

　이때까지 황영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동아마라톤대회와 같은 해인 91년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 마라톤대회에 출전했을 때는 조금 달랐다. 2시간12분41초로 대회 최고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다음 해인 92년에 일본 벳푸-오이타 마이니치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한국 최고 기록인 2시간8분49초로 2시간10분 벽을 깬다. 그러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제야 이름을 제대로 알리게 됐다.

　그러나 황영조를 올림픽 우승자로 점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2년 8월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코스는 역대 올림픽 중 가장 난코스였다. 30㎞ 지나면서 나타나는 '몬주익 언덕'에서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달리는 차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함께 달린 일본의 모리시다 선수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이겨야 한다. 일본을 이겨야 우리의 한을 풀 수 있다.' 20세가 갓 넘은 젊은 청년 황영조는 되뇌었다.

　결국 그는 아무리 지쳐도 내리막에서 승부가 갈리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내리막에서 모리시다를 따돌리며 2시간13분23초로 골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우승을 생각지 못한 한국 사진기자들은 모두 철수하거나 철수를 준비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의 우승 사진은 한국 기자에게 찍힌 사진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우승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세계를 제패할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앞의 기록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우승은 준비된 결과였던 것이다.

　올림픽 마라톤 우승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은 56년 만의 쾌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손기정옹이 딴 우승을 두고 일본인들은 "너희가 아무리 강해도 올림픽 출전은 일본의 국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시 우리의 국력으로는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을 역으로 보면 국력은 약하되 한국인은 강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리라.

　그러다 이러한 일본인의 항변을 무너뜨린 사건이 바로 황영조의 우승이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올림픽에 출전해 황영조가 우승을 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인도 강하고 대한민국도 강하다는 인식을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당시 경기를 마치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도 황영조의 우승을 보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영웅'이 바로 황영조다.

<황인원 선임기자 사진 김기남기자>

-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주익 영웅’ 황영조는 -

　1970년 강원도 삼척 출생.
　1990년 강릉명륜고등학교 졸업.
　1996년 고려대학교 사범대 체육학과 졸업
　2004년 고려대학교 체육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4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한국 최고 기록 수립(2:08:09)
　2000~현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선수단 감독
　2003~현 강원대 스포츠 과학부 겸임교수
　1991년 국민체육훈장 백마장
　1992년 국민체육 최고훈장 청륭장.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