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봬도 제 필모그래피가 제일 길어요.”

어디서 많이 봤지만 이름이 잘 안 떠오르는 배우들이 있다. 코미디 ‘라듸오 데이즈’에서 만철 역을 맡은 오정세가 바로 그런 배우다. 1997년 장길수 감독의 ‘아버지’를 시작으로 ‘귀신이 산다’ ‘오브라더스’ ‘극락도 살인사건’ 등 30여편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라듸오 데이즈’에서 아나운서 만철과 극중극 ‘사랑의 불꽃’의 장훈 역으로 1인 2역을 소화했다. 11년 동안 영화와 연극무대를 오가며 쌓아온 내공을 뿜어내며 명연기를 펼쳐 박수갈채를 받았다.

“류승범·김사랑·황보라 등 모두 저보다 유명한 배우들이지만 출연 편수를 대면 저보다는 적죠. 정말 10여년 동안 죽어라 하고 오디션을 보고 다녔어요. 1년에 제작되는 한국영화가 100편이라면 제작사 100곳에 제 프로필을 보내야만 마음이 편했어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라듸오 데이즈’도 오디션을 통해 출연하게 됐어요.”

오정세는 ‘라듸오 데이즈’ 촬영 내내 오랜만에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 라디오 드라마 녹음분을 들으며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내가 따먹을 수 있는 부분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1930년대 라디오 드라마를 들어보니 너무 어색했어요. 그래서 1960~1970년대 라디오 드라마 투를 흉내냈어요.”

오정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라듸오 데이즈’는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실망하지는 않아요. 내 꿈과 능력을 믿기에 초조해하지 않아요. 다시 열심히 오디션을 보러다녀야죠 뭐. 하하하. ‘라듸오 데이즈’를 통해 자신감을 쌓은 게 큰 소득인 것 같습니다.”

오정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짝을 20년 동안 기다려 결혼에 골인한 집념의 사나이다. 쉴 때는 늘 부모님이 운영하는 ‘오복 슈퍼’의 배달 일을 돕는 효자이기도 하다.

“정말 올해에는 우리 슈퍼 이름처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복이 쏟아졌으면 좋겠어요. 짧은 인생인데 모두 행복하게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