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달려간다. 생활에 찌들어 잠시 멈추어 서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무영 감독의 세번째 영화 ‘아버지와 마리와 나’(제작 이이필름, 개봉 12일)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여유의 미학’을 되찾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러면서 모두가 1등이 되려는 이 사회에 “루저로 살아도 삶을 진정으로 즐기고 행복하다면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아버지와 마리와 나’의 세 주인공들은 사회에서 소외받는 ‘마이너리티 인생’들이다. 아버지 태수는 왕년에 가요계에서 한 끗발 날렸던 전설의 포크록 가수. 마리화나에 푹 빠져 아내까지 잃은 그는 15년간의 교도소 생활을 끝내고 로커 지망생인 고교생 아들 건성(김흥수)을 찾아간다. 부모의 보살핌 없이 외롭게 자라온 건성(아버지가 건성건성 살라고 지어준 이름)은 매사가 가벼운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 공통점이라곤 ‘음악’밖에 없는 이들 부자는 만나면서부터 시종일관 부딪친다. 그러던 어느날 미혼모 마리(유인영)가 이들 부자의 삶에 끼어들면서 서로의 감정에 좀더 솔직해져간다.

‘아버지와 마리와 나’는 폭력과 자극적인 영화가 판을 치는 요즘 세태와 다른 정말로 ‘착한 영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성격이 판이한 부자가 오랜만에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화해하는 과정은 솔직히 이제까지 많이 봐온 스토리다. 특별한 사건이 없이 감정의 교차로 진행되는 극 흐름은 너무 잔잔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마리와 나’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영화를 관통하는 낙관적이고 자유로운 정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또한 러닝타임 내내 흐르는 록의 자유로운 정서는 세대를 넘어선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영화 결말부 건성이 아버지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눈물 흘릴 때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무영 감독이 각본을 쓰면서 애초에 ‘아버지와 마리화나’라고 붙였다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영화 속에서 마리화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나라에서 하지 말라잖아”라면서 아버지를 뜯어말리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냥 좋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거든”이라고 말한다.

주연을 맡은 김상중과 김흥수는 영화에 흐르는 정서처럼 기름기를 쫙 뺀 과장 없는 담백한 연기를 펼친다. 다소 투박해보이면서 진심이 우러나와 더욱 감동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늘 기대주에 머물렀던 김흥수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선보인다.

‘아버지와 마리와 나’는 수백억원의 제작비가 든 블록버스터들과 힘든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비록 화려하게 내세울 건 없지만 영화 속을 흐르는 진정성만은 인정받아야만 할 것이다. 마치 아일랜드 영화 ‘원스’의 한국판을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