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막강 애니메이션 '쿵푸팬더'가 전국 331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애니메이션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다. 지난 주말 영진위 집계로 331만명을 기록,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을 가지고 있는 '슈렉2'(330만명)를 넘어섰다.

　'쿵푸팬더' 물론 재미있게 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를 들이댄다면, 이 영화는 서양에서 만들어져서는 안되는 작품이었다. 줄거리, 배경, 그 속에 담겨있는 정신까지 그것은 온전한 동양의 것이었다. 다만 그 영화를 만든 막강한 자본력과 화려한 기술만이 서양의 그것이었다.

　오죽하면 중국의 유명한 판다 예술가인 자오반디趙半狄)는 국가광전총국 영화국을 항의 방문하여 "쿵푸팬더가 중국의 국보인 판다와 쿵푸를 도둑질해, 지진 후 살아남은 이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며 쓰촨성 및 중국 전역의 상영 금지를 요구했을까. 하긴 10년 전에도 월트디즈니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화목란(花木蘭)' 이야기를 미국식 '뮬란'으로 재탄생시켜 세계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쿵푸 팬더'를 보면서 이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뭘까. 같은 중국문화권에서 살아온 한국인들도 이 영화를 그저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만은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하면 된다'(이건 과거 박정희시대 온국민의 구호였다)는 카피를 앞세운 이 영화를 훑어보자. 평화의 계곡에서 아버지의 국수 가게를 돕고 있는 팬더 포. (팬더의 이름이 포인건 우연의 일치일까. 베트남 쌀국수 이름이라니) 아버지는 국수의 비법을 알려줘서 가업을 잇게 하고 싶지만, 포의 관심사는 오로지 '쿵푸 마스터'에 있다.

가게 일은 뒷전으로 하고 쿵푸의 비법이 적힌 용문서의 전수자를 정하는 '무적의 5인방' 대결을 보러 시합장을 찾은 포. 그런데 자신의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 포가 우그웨이 대사부로부터 용문서의 전수자로 점지받는다. 무적 5인방은 물론 시푸 사부조차 이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운데 어둠의 감옥에서 탈출한 타이렁을 막아야 하는 미션이 그에게 떨어진다.

　영화를 보면서 '쿵푸팬더'가 마치 주성치가 감독하고 주연한 '소림축구'의 애니메이션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왜일까. 중국인 과장과 해학, 동양적 웃음의 코드가 적절히 믹싱되어 관객을 홀렸던 '소림축구'를 이 영화에 대비시켜 보자.

　이제는 퇴물취급 받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 명봉이 외모만으로는 도저히 축구선수라 할 수 없는 옛 소림사 동료들을 찾아간다. 외모비관론자, 뚱땡이, 박봉의 청소부, 방콕론자, 돈벌레 등을 모아 씽씽축구단을 만든다. 처음엔 동네 축구단 수준도 안되었던 이들이 전국을 제패한다는게 기본줄거리다. 두 영화를 뜯어보면 '하면 된다'는 정신과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무예'의 힘이 두 축을 이룬다.

　여기에 '쿵푸 팬더'는 공맹사상을 바탕으로한 동양적 정서와 명언들을 적절히 영화 여기저기에 배치해놨다. 영화 속에서 "There are no accients."(우연은 없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모든 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불교적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우그웨이 대사부는 또 "You must believe."(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포의 아버지가 맛있는 국수를 만드는 비법이나, 최고의 쿵푸 강자가 되는 비법이 담겨있다는 용문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찾는 불교적 경지, 혹은 내가 나이인겐지, 나비가 나인겐지 모르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의 세계가 거기 녹아있다.

　중국의 전통적 건물과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케하는 풍광, 쿵푸의 유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각종 동작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영화 속에 녹아있어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 얘기로 들어와 보자.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지만 영화의 마지막 엔딩자막을 눈여겨 보면 한국인의 이름이 보인다. 영화의 주요 스텝으로 참여한 한국인 제니퍼 여 넬슨과 전용덕이 바로 그들이다. 제니퍼 여 넬슨은 이 영화의 스토리 아티스트이고, 전용덕은 3D 비주얼을 담당했다.

두 사람 모두 팀장 자격으로 참여했으니, 이 영화의 주요핵심인 동양적 스토리와 동양적 색감이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셈이다. 이들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꼬박 5년을 매달렸다고 했다.

　스크린 쿼터가 무용지물이 되고, 작금의 한국영화는 불황을 넘어 보릿고개를 맞고 있다. 한때 한국영화의 펀더맨탈이 튼튼해졌기 때문에 스크린 쿼터는 구시대적인 유물이라고 말했던 한국영화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또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문화가 곧 국력이라면서 세계 시장을 겨냥한 한국적 애니메이션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언제쯤 우리도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위해 수년간을 투자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온 역량을 쏟아붓는 제작자가 나올 것인가. 대답은 현재로서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쏟아져 나오는 쿵푸 팬더 시리즈나, 미이라 시리즈,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를 기다렸다가 자녀들과 함께 영화관을 찾을 수밖에.

<사진:영화 '쿵푸팬더'(위)와 '소림축구'>

<오광수기자 ok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