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

SK 김성근 감독은 3일 개인 통산 1000승을 달성한 뒤 “내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정말 귀중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저 땀과 눈물로 만들어낸 대기록을 앞에 두고 내놓은 소감으로만 풀이됐다.

하지만 김감독이 괜히 ‘생명’ 얘기까지 갖다붙인 것은 아니었다. 김감독이 그 이유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김감독은 4일 인천 히어로즈전에 앞서 “사실 10년 전에 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며 “어려운 시기에서도 야구를 해야되겠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89년 8월 쌍방울을 이끌고 있던 김감독은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소변을 볼 때 통증을 느낀 김성근 감독은 전주에 있는 비뇨기과에서 요도염이란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를 했다. 하지만 별 차도가 없자 김감독은 원광대병원과 서울 삼성병원에서 정밀진단 끝에 신장암이란 최종 판정을 받았다. 야구밖에 몰랐던 김감독에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하지만 김감독은 수술을 선택해 오른쪽 콩팥을 제거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쌍방울에서 김감독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재정난에 시달린 구단은 박경완과 조규제 등 주전 선수들을 팔아 팀을 유지했다. 자연스럽게 김감독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신장암까지 얻게 된 것이다. 김감독은 “새벽까지 전력 분석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아마 경기 중 화장실을 가지 않는 징크스 때문에 신장 상태가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김감독은 신장암 수술 사실을 지금까지 철저하게 비밀로 했다. 혹시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말이 돌면 야구를 그만둬야 하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강에 대한 외부에서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즌 중이었지만 수술은 아무도 모르게 했다”며 “수술한 다음날부터 걸어다녔고 병명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는 담석이 있다고 둘러댔다”고 설명했다. “신장암 수술 이후 언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하지만 야구와 생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매일 야구장에 나섰다”고 천직인 야구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