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는 끊기고 한숨소리만 들린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 하면 문득 우시장이 떠오른다. 서울은 물론 경기와 인천, 지방의 소도시 사람들에게도 ‘마장동 우시장’은 한 말로 각인돼 있다. 과거 이 곳에는 우리네 삶의 애환이 젖어 있었다. 부모님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누렁이를 끌고 온 김서방은 상인에게 집안의 대들보를 넘기고는 무너진 가슴을 꺼이꺼이 울음으로 메웠다. 대학에 간 아들 녀석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누렁이를 넘긴 이서방은 허리가 좀 휘겠지만 아들놈의 사각모를 떠올리며 웃는 얼굴로 이 곳을 떠났다.

멋모르고 아버지를 따라왔다가 “아부지 누렁이 팔지 마. 내가 밥 조금 먹을게” 하며 엉엉거리는 어린 주인과 제 죽을 때면 눈물을 흘린다는 소가 ‘음머 음머’ 하는 울음이 세월을 녹이던 곳이 여기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는 삶의 애환을 찾기 힘들고, 삶의 고동 소리도 듣기 어렵다. 황량하다, 적막하다, 싸늘하다 따위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 됐다. ‘마장동 우시장’은 이제 중년들의 기억 속에만 아른거리는 추억의 동네일 뿐이다. 요즘 신세대들은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선 마장동 일대에 소를 잡는 도축장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의아하게 받아들인다.

물론 이곳은 수도권 축산물 유통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대표적 축산물 전문 도·소매 시장의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다. 2000여개의 점포를 수천명이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연간 200만명에 가까운 발길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단일 육류시장으로서는 세계 제일이다.

하지만 ‘우시장’이 주는 막연한 잔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이름도 ‘우시장’이 아니라 ‘마장 축산물시장’이 귀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다.

1963년 종로구 숭인동에 있던 우성산업 도축장이 마장동으로 옮겨 오고, 도축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소의 내장과 돼지의 부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마장동 우시장’의 이름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당시 새벽 4시부터 아침 10시까지 매매가 이루어지는 사이 하루에 소 250여 마리와 돼지 2000여 마리가 도축됐다. 이곳에는 늘 ‘고기’가 있었고, 고기가 있으니 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연스레 돈도 넘쳐났다. 이 동네 개들도 뼈다귀 대신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부자였고, 늘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이 삶의 맥박을 고동치게 했다. 배고팠던 시절, 팍팍했던 서민들에게는 입에 침이 돌게 하는 풍요의 동네였다.

그러나 이곳 역시 개발의 광풍을 비껴가지 못했다. 1998년 도시개발로 이 일대에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부터 35년간 운영되던 마장동 도축장이 문을 닫았고, 이곳에 퇴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도축장이 빠진 상태에서 명맥을 그대로 이어가기는 불가능했다.

상인들과 관할 성동구청은 쇠락하는 ‘마장동 우시장’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여러가지로 손을 썼다. 2003년 26억원을 들여 옛 우시장 천장을 터널형 캐노피로 바꾸는 등 현대화 작업을 마쳤다. 어둡고 지저분하던 축산물시장을 말끔하게 정비해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복안.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변통에 불과했을 뿐 옛날의 명성을 되살리기는 역부족이었다.

동대문구 용두동 옛 동마장터미널 자리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면서 소매가 부쩍 줄었다. 청계천변 주차장이 없어진 것도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주차가 편리한 대형 할인점으로 손님을 빼앗긴 것. 죽 늘어선 정육점이 관광상품이 될 리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불어닥친 ‘구제역 한파’는 이곳 경기를 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동안 폐쇄됐다가 다시 문을 열었지만 한우와 국산 돼지고기를 찾던 손님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수개월째 파리만 날리고 있다. 한우와 국산 돈육만을 고집하던 점포 주인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수입 고기를 갖다 놓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워낙 뜸해 별무신통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들여온 고기를 제때 소진하지 못하고 헐값으로 넘기기 일쑤다. 이로 올해 종업원을 줄이거나 가게 문을 닫는 곳이 속출했다.

시간이 흘러 봄이 오고 ‘구제역 쓰나미’까지 잦아들었지만 재래시장 특유의 생기 넘치는 거래 풍경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검은 봉지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 ‘아줌마’들도 더는 볼 수가 없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이기 위해 발품을 팔던 주부들마저 이곳을 외면하고 있다는 소리다.

이러한 분위기는 축산시장 옆에서 30년 가까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하던 먹자골목의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낮이고 밤이고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고기를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르던 이곳 ‘맛집’들이 요즘에는 휴일에도 파리를 날린다. 코앞에 있는 가게들을 외면하고 멀리까지 가서 질 좋은 고기를 가져와도 원체 사람이 없어 한숨만 깊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장사를 했다는 한 가게의 주인은 “지난 1월부터 매출이 급감해 직원을 거의 정리했는데도 빚만 늘고 있다”며 “신문과 방송에서는 매일 경기가 풀렸다고 하는데, 말짱 거짓말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