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파나마의 16세 새우잡이 소년 마리아노 리베라. 그는 자신이 26년 뒤 메이저리그 새 역사를 쓴다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뉴욕 양키스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42)가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최다세이브 기록을 경신하는 위업을 세웠다. 리베라는 20일 미국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미네소타 트윈스와 홈경기에서 양키스가 6-4로 앞선 9회초 마운드에 올라 3명의 타자를 모두 돌려세우고 통산 602번째 세이브를 올렸다.

602세이브는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개인 최다세이브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은퇴한 트레버 호프만의 601세이브였다.

20일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주제곡인 록그룹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등판한 리베라는 미네소타의 트레버 플루프, 마이클 커디어를 각각 2루수 땅볼과 우익수 직선타로 잡아내 투아웃을 만들었다. 이어 마지막 타자 크리스 파멜리에게 주무기 컷패스트볼 3개를 연달아 던져 스탠딩 삼진으로 잡고 대기록의 마지막 조각을 끼워넣었다.

지금은 1년 연봉만 150억원이 되는 거물급 투수지만 처음부터 리베라가 전도유망한 야구 선수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파나마의 가난한 어촌 푸에르토 카이미토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리베라에게 야구는 단순한 취미였다. 오히려 축구 선수로 대성하겠다는 꿈을 꾸며 공을 차고 또 찼다.

그러나 일찌감치 찾아온 발목 부상은 리베라 인생에 전환점이 됐고 그는 이후 동화같은 인생 스토리를 써나갔다.

그는 16살 때 선장인 아버지를 따라 새우와 정어리를 잡기 시작했으나 “일이 너무 힘들어서” 어부를 포기하고 19살에 지역 아마추어 야구팀인 파나마 오에스테에서 유격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어느 경기에서 동료 투수가 난조를 보이자 리베라는 “내가 던져보겠다”고 나섰고 의외로 호투하면서 투수로 대성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는 2주 후 파나마시티의 양키스 트라이아웃 캠프를 거쳐 3000달러에 불과한 계약금을 받고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다.

미국 생활은 고독의 연속이었다.

루키 시즌이던 1990년 방어율 0.17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지만 영어를 못 하다보니 외톨이일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1992년엔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재활을 마친 뒤 승승장구한 그는 1995년 5월23일 양키스 선발투수로 빅리그 무대를 밟았고 데뷔전 0-10 참패에도 불구하고 150㎞ 초반대 직구로 양키스에서 입지를 다졌다. 1996년 중간계투를 거쳐 1997년부터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팀의 소방수로 낙점 받은 그는 오늘날 누구도 예상 못한 대기록을 수립할 정도로 롱런하고 있다.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살짝 휘는 컷패스트볼은 박찬호(38)가 지난해 양키스 시절 리베라에게 배워 새 무기로 장착했다고 고백할 만큼 유명하다. 그는 매년 사재 5억원을 털어 파나마와 미국의 불우 아동을 돕는 등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면모를 갖고 있다.

그는 602세이브를 올린 순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고독을 떠올렸다. 리베라는 “마운드에 섰을 때 나 말고 아무도 없는 느낌이었다. 데뷔 이후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면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기록이다. 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