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동네 골목에서 심지어 자기집 마루에서 자던 아이들이 악마의 희생물이 되는 세상이다. 이번 나주 7세 여자 어린이 사건을 비롯, 많은 소아 성범죄자들이 아이들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보았다고 한다. 징그럽고 치가 떨리는 이들은 성폭행이나 살인범만이 아니라 그런 음란물에 만들고 유포한 인간들이다.

어디 성폭행뿐일까.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아동학대가 일어난다. 술에 취해 자식을 때리는 아버지, 어린 아이들을 놔두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PC방에 가거나 가출을 일삼는 엄마도 모두 아동학대 범죄자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사실은 공영방송에서, 그것도 온 가족이 보는 일일연속극에도 이런 아동 학대가 버젓하게 드라마로 방영된다는 것이다. SBS TV 일일극 <그래도 당신>에서는 남자주인공 김승수가 출세와 돈을 위해 재벌가 아내인 왕빛나와 결혼하며 조강지처 신은경을 버린다. 신은경은 배신의 아픔 속에서도 친환경 비누를 개발해 호응을 얻고 외국 회장품사 임원과 미팅을 앞두고 있다. 그의 성공을 막기 위해 왕빛나는 태연하게 신은경의 딸 미소의 유괴를 사주한다. MBC TV 일일극 <그대없인 못살아>에서도 조연우는 첫사랑 황인영과 재회한 후 아내 빅인혜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박인혜는 아들 왕석현과 함께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데, 조연우와의 결혼을 위해 황인영은 왕석현을 납치하다시피 하고, 온갖 구박을 일삼는다. 나쁜 어른들의 공포에 아이들은 수시로 오줌을 싸는 증세를 보이고 매일 전화를 걸어 “엄마, 보고 싶어”라고 울부짖는다.

물론 실생활에선 더 극악무도한 일이 일어나지만, 그리고 드라마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예의와 상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출세를 위해 친자식은 안중에 없는 아버지와 어린아이를 볼모로 거침없이 유괴를 하고 학대를 하는 장면을 저녁식사 시간대에 버젓하게 내보내는 것은 분명 횡포다. 더구나 그 아이들이 초등학생도 아니고 유치원생이거나 더 어린 유아인데 대체 그 아역배우들은 그런 연기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다른 드라마에서도 아이들이 수시로 구박당하고 비정상적 어른들 가운데서 괴로워 하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

그런 드라마들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작가 분은 아이가 없나” “제발 어린아이를 도구로 쓰지 말아달라” 등의 비난성 댓글이 올라온다.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드라마에서 아이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면 은연 중 아동학대에 대한 감각도 무뎌질게 뻔하다. 작가에게 놀라운 상상력이나 엄청난 취재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며 <전원일기>에서 최불암이 어머니에게 보여준 효심을 그리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적어도 드라마에서만이라도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진 않아도 학대받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