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정희원(21·핑)은 밤새 화장실을 3차례나 다녀왔다. 이제 남은 것은 4라운드뿐. 그야말로 완전히 무너지지만 않으면 생애 첫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편안히 잠을 이룰 것으로 보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정희원은 “긴장이 됐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11시30분쯤 잠들었는데 잠을 설쳤다. 그래도 아침에 개운했다”고 말했다.

꽉 막혀 있는 터널을 지나듯 조바심을 내며 맞은 새 아침. 정희원이 자기 앞에 놓인 마지막 다리를 건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7타차 리드를 잘 지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정희원은 16일 경기도 안산시 아일랜드리조트 오션 웨스트·사우스 코스(파72·6722야드)에서 열린 메트라이프·한국경제 제34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챔피언십(총상금 7억원) 최종라운드에서 무난한 레이스 끝에 정상에 올랐다. 버디 2개와 보기 3개로 1타를 잃었지만 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로 2위 허윤경(22·현대스위스)을 6타 차로 제치고 생애 첫 승을 신고했다.

정희원은 전반 9홀에서 버디와 보기를 1개씩 맞바꾸고 후반 들어서는 버디 1개에 보기를 2개 기록했지만 거칠게 추격하는 선수가 없어 여유있게 우승을 확정지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유도를 해 비교적 클럽을 늦게 잡은 정희원. 하지만 그 덕에 여자선수 중 힘은 최고였다. 정희원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팔씨름 대회에 출전해 남학생을 이긴 적도 있다. 그러나 골프는 힘이 우선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2009년 데뷔한 뒤 2010년 8월 LIG클래식에서 6위에 오른 것이 개인 최고 성적일 만큼 그동안 인상적인 이력을 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에 골프를 체계적으로 배운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다. 정식 트레이닝을 받은 것이 고작 2~3개월뿐이었다.

전주 기전대학 호텔외식조리학과 교수인 아버지 정영주씨(52)는 딸을 적극 지원하지 않았다. “프로에서는 번 돈을 골프하는 데 투자하라”는 얘기에 정희원은 홀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정희원은 “이전에는 혼자 쳤지만 이제는 프로들에게 레슨도 받고 하면서 좋아졌다”며 “이전에는 퍼트를 정말 못했다. 항상 퍼트가 안 돼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퍼트가 정말 잘됐다. 퍼트가 잘된 계기는 체력적인 밸런스가 잘 맞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희원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선수생활의 반전을 이뤘다. 지난해까지 쌓은 상금 1억1300만원보다 많은 우승상금 1억4000만원을 차지하며 KLPGA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정희원은 “목표가 10등만 하자는 거였는데, 이렇게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게 기적이 아닌가 싶다”며 “‘방심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며, 침착하게 원래 하던 대로 하면 해낼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대로 잘됐다”고 말했다.

한편 허윤경은 지난주 한화금융클래식에 이어 2주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또 이정민(20·KT)은 2언더파 286타로 단독 3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