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하나 드세요. 어차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요.”

점심을 거르고 온 기자에게 남규리(27)는 대뜸 자신의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그룹 씨야의 멤버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배우라는 말이 더 익숙한 그녀는 ‘인형 같은 외모’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하지만 직접 만난 남규리는 단순히 인형같다고 표현할 수 없는, 털털한 성격에 더운 마음을 가진 배우였다. 남규리와의 인터뷰는 수많은 선입견을 유쾌하게 걷어내는 반전이 있었다.

최근 종영한 KBS2 월화극 <해운대 연인들>(극본 황은경·연출 송현욱 외)에서 남규리는 윤세나 역을 맡았다. 주인공 이태성(김강우)의 원래 약혼자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다. 약혼자가 부산에서 소식이 두절되고, 막상 그를 찾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기억상실 상태에서 만났던 고소라(조여정)에게 기울어버렸다. 그는 극 막바지에서 악녀로 변신한다.

“태성과 세나의 추억이 보인다든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설정이 깔리지 않아 힘들었어요. 배역을 몸에 맞출 수 없었죠. 그냥 맹목적으로 태성에게 집착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슬펐어요. 워낙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역할이니 스트레스가 컸어요. 현장에 가는 것도 힘들 정도였죠.”

거기다 초반 정규배역으로 캐스팅 됐다가 제작사에 의해 특별출연으로 출연형식이 변경된 것도 미스터리였다. 그는 특별출연이든 카메오든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제작사와 소속사는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래저래 남규리의 <해운대 연인들> 적응기는 힘이 들었다.

결국 남규리는 극중에서 연인 김강우를 조여정에게 내주고, 마지막회 최준혁 역의 정석원과 로맨스를 펼치는 여운을 남겼다. 이어서는 현재 방송 중인 <울랄라 부부> 첫 회에 이백호 역 최성국의 불륜녀로 카메오 출연했다. 모처럼 <해운대 연인들>의 무거움을 벗고 망가지는 코믹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7월에 방송한 KBS 단막극 <칼잡이 이발사>에서 맺었던 이정섭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출연했어요. (김)정은 언니도 가수 때 SBS 음악프로그램 <초콜릿>에서 뵙고 처음 뵀어요. 보통 여배우들이 질투나 견제가 있기 마련인데 정은 언니는 전혀 그런 게 없으셨죠.”

지난 작품의 의리로 카메오 출연을 흔쾌히 결정할 만큼 남규리는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녀를 인형으로 알고 있지만 순천이 고향인 털털한 전라도 아가씨다. 흥부네 가족처럼 대가족의 일원으로 자란 남규리는 아직도 명품을 협찬 외에는 따로 사본 적이 없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2만원짜리 신발을 신고 다닌다. 워낙 사치와 거리를 두고 살다보니 운동 때 입던 레깅스를 기워입은 사실이 주변에 발각돼 화제가 됐단다. 음식도 보신탕 빼고는 다 먹는다.

“가수 활동 때는 잡혀진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면 지금은 제가 스스로를 더 알려야 해요. 지금 당장은 제 진면목을 다 보이진 못하지만 언젠가 꼭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영화든 드라마든 주연이 아니더라도 인상적인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대책 없는 사고뭉치였던 <칼잡이 이발사>의 미자 역은 남규리 연기의 새 가능성이었다. 남규리는 예쁘게 보이기보단 진짜처럼 보이려하고,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그는 곧 국내에 수입될 중국드라마 <나의 실억(기억을 잃은) 여자친구>에서 다시 한 번 가능성을 시험받는다.

“저 생각보다 구수한 사람이에요. 편하게,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 보세요, 이렇게 움직이는 인형이 어디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