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채원(26)은 참으로 ‘해독’이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인터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늘 화면 가운데든 구석이든 묘한 존재감을 뿜는데 누구도 그를 쉽게 안다고 단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인터뷰 때도 그랬다. 묘한 표정으로 큰 눈을 뜨고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출연하는 작품마다 성과를 거뒀다. 지금까지 문채원을 보는 독자들도 다 그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지금부터 오감을 총동원해서 접한 문채원을 풀어내려 한다.

문채원은 KBS2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극본 이경희, 연출 김진원 외)에서 서은기 역을 맡았다. 은기는 극중 태산그룹 총수의 딸로, 한재희(박시연)에게 복수하려는 강마루(송중기)의 꾀임에 빠져 복수의 도구로 이용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파트너가 된다. 다시 차사고로 기억을 잃고 마루를 못 알아본다. 기억이 돌아온 은기는 모든 사실을 알아채고 마루에게 복수하려한다.

분명 쉽지 않은 캐릭터다. 문채원은 드라마를 통해 선과 악을 넘나드는 캐릭터에 도전했다. 기억을 잃기 전 은기는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았던 날카로운 아이였지만 기억을 잃은 후에는 하얀 백지 같은 순수함을 발산한다. 문채원은 “여자로서는 그런 캐릭터가 없었다”고 했다. 예전에 푹 빠져 본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정재민(조인성)의 다른 이름이 바로 서은기였다.

“단순하게 안하무인인 재벌가 딸의 모습이 아니라, 그런 캐릭터가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어요. 그런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복수극이란 줄거리에 앞서 캐릭터가 끌렸다.

이 드라마는 문채원이 2007년 본격적인 연기도전 이후 처음으로 ‘또래 남자’를 상대역으로 맞은 드라마였다. 그의 첫 멜로 연기대상은 <바람의 화원>(2008) 문근영이었다. 이후에도 윤상현을 좋아하고(아가씨를 부탁해), 박시후와 멜로에 빠졌지만(공주의 남자) 모두 자기보다 7~8살 위인 남자배우였다. 그런 의미에서 송중기(27)는 특별했다. 게다가 박시연(33)과는 ‘의좋은 자매’였다. 문채원은 “시연언니와 살가운 연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추운 촬영장을 지켰다.

서은기의 ‘착한남자’는 강마루였지만 문채원의 착한남자는 강마루는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심성이 착한 남자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채원은 “심성이 착하다는 게 매력이 없다는 의미로 바뀌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고는 자신은 나쁜 남자와 착한남자 중 반드시 착한 남자를 고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채원은 야구로 따지면 ‘선구안이 무척 좋은 타자’다. 나쁜 공(작품)에는 방망이(출연수락)가 안 나가고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제대로 한 방을 날린다. <바람의 화원>을 비롯해 <찬란한 유산>(2009), <공주의 남자>(2011)가 다 그랬다. 영화 <최종병기 활>(2011)도 747만명을 넘기는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항간에는 ‘문채원을 방송사 편성팀장에 앉혀야 한다’는 농담도 돌았다. 이를 그대로 전했더니 그는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그가 좋은 작품을 침착하게 고를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엄청난 ‘영화광’이다. 집에 DVD, VHS 테이프를 비롯해 영화들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쉴 때는 무조건 하루에 한 편 이상은 영화를 본다. 최고 많이 볼 때는 7편을 하루에 몰아본적도 있다. 요즘엔 게리 올드만에 꽂혀서 <일급살인>(1995)도 보고 <다크나이트> 시리즈도 새롭고, 흡혈귀로 나왔던 <드라큘라>(1992)도 재밌게 봤다. ‘문채원을 잘 알고 싶으면 꼭 봐야 하는 영화’를 물었더니 신나는 표정으로 아이패드를 꺼내 하나하나 불러준다. 전형적인 마니아만의 즐거운 모습이다.

“<가을의 전설>(1994), <더 리더>(2008),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2004), 스웨덴판 <렛미인>(2008), <블라인드>(2007), 캐리 멀리건이 나오는 <네버 렛미고>(2010)!”

좋은 영화를 보는 일은 문채원에게 치유임과 동시에 끊임없는 자극의 원천이다. 좋은 작품을 통해 그는 좋은 작품을 가리는 법을 알았다. 그는 남들이 많이 하는 캔디 캐릭터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는 2013년 새해에 세 가지 약속을 내걸었다. 외국 혼자 여행하기와 낚시 배우기 그리고 머리 숏커트로 자르기다. 숏커트 머리로 해외에서 낚시를 하는 문채원을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해줘도 좋겠다. 그는 가장 행복한 상태일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