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브라질월드컵 본선에 오른 축구대표팀의 내분설은 ‘설’(說)이 아니라 ‘실’(實)이었다. 대표팀 선수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감독에게 반발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스스럼없이 내보였고, 그동안 내분설에 대해 줄곧 부인해 왔던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도 이를 인정하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3일 성남과의 홈경기에 앞서 스포츠경향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하나로 뭉치지 못한 대표팀의 실상을 안타까운 목소리로 전했다. 최 감독은 “일부 해외파들이 식사시간에 자기들끼리 밥먹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거기서 편을 가르고 팀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줄곧 제기된 국내파와 해외파의 갈등을 사실상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일부 해외파들의 이런 행동은 결국 팀을 지휘하는 감독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최종예선만 지휘하는 시한부 감독으로서 권위가 서지 않던 최 감독에게 선수들 간 편가르기는 팀을 이끌어 나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됐다. 그는 “내가 본선까지 간다면 그런 선수들을 보고만 있었겠는가. 일부러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대표팀에 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팀에서 영향력이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큰 선수라도 그렇게 해야한다. 그래야 팀이 살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마침 이날 대표팀 출신 기성용(24·스완지시티)과 수비수 윤석영(23·퀸스파크 레인저스)이 온라인에 쓴 글은 대표팀 내분설의 실체를 직접 자인한 꼴이 됐다. 전날 영국으로 출국한 기성용은 이날 팬 카페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SNS 마니아이던 그는 “팬들과 소통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는데 오히려 오해를 샀고, 하고 싶은 말들이 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탈퇴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기성용은 트위터를 통해 팬과 소통해 왔으나 이 과정에서 의문의 글도 많아 자주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지난달 자신의 트위터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며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 자격이 없다”는 글을 올렸고, 이 글은 곧바로 최강희 대표팀 감독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왔다. 대표팀의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 3연전 엔트리에서 빠진 상황에서 나온 글은 많은 뒷말을 낳았다. 이에 최 감독은 3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얘기하라”며 기성용의 트위터 글을 비판하는 의견을 밝혔다. 기성용의 SNS 계정 삭제는 최 감독의 이번 인터뷰에 대해 또 한번 강수로 맞받아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윤석영도 이날 최 감독이 인터뷰에서 가볍게 얘기한 수비수들과 혈액형의 상관관계에 대해 반발하며 지도자의 권위에 정면 도전했다. 최 감독은 “O형의 경우 성격은 좋지만 덜렁거리고 종종 집중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석영은 2002 월드컵 대표팀 멤버와 런던올림픽 멤버 중 O형 수비수들의 이름을 거명했다. 자신도 O형이라고 밝힌 윤석영 역시 6월 대표팀의 월드컵 최종 예선 3연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선수가 감독의 말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윤석영의 트위터 글에 대해 포항 황선홍 감독은 이날 서울과의 홈경기에 앞서 “축구선수는 운동장에서 얘기해야 한다. 트위터는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고 화풀이가 전부다.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따끔한 충고를 했다.

선수끼리 나뉘고, 감독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선수들. 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의 배경에는 이처럼 하나로 뭉치지 못한 팀 분위기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은 모두 사실에 가깝게 드러났다. 최강희호는 그야말로 자중지란 속의 오합지졸이었던 셈이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의 첫번째 임무는 바로 대표팀의 단합과 기강 확립이다. 팀보다는 자신만 생각하는 선수들이 브라질에 간다면 성적은 이번 최종예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