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후배들아. 가을이 오긴 왔구나. 어쩌면 나한테는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 될 것 같다.

부상 때문에 야구를 그만 둘뻔하고, 그래도 아직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수술을 받고, 다시 LG 유니폼을 입게 되고…. 그때만 해도 이런 무대를 다시 함께 즐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야구 오래 하다보니 진짜로 가을에 야구할 기회가 왔네.

지난 10년 동안 후배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해주는 기분이 들어 굉장히 미안했는데 이렇게 함께 꿈에 그리던 날을 즐기게 되니 매우 감격적이고 설렌다. 지난 해 우리 선수단에서 금기어였던 ‘유광점퍼’를 우리가 이렇게 자랑스럽게 입게 된 것도 정말 뿌듯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의 포스트시즌은 이제 시작됐지만 막상 이 자리에 서니 내년에도 우리 LG가 여기에 있고 싶다는 욕심이 또 생기네.

언제나 겨울에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하고도 초반에 부상이 나오고,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어 중반이 지나면 떨어지던 악순환을 올해는 잘 끊은 것 같아. 큰 부상 없이 대부분 시즌 내내 계속 자리를 지켜준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걱정했던 포수 자리도 요섭이와 재윤이가 잘 해줬고, 지환이와 주인이도 내야에서 수비로 많이 도와줘 팀 방어율이 좋아졌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팀을 이끈 선수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해. 올라왔으니 이제는 이 자리를 지켜내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다. ‘이렇게 하니 우리도 되는구나’ 하는 것을 다 같이 알았으니 후배들 모두 자신감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대형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갓 입단했을 때 2군에서 처음 만나 내가 많이 예뻐하는 후배. 이번 가을에 힘을 내보자.

내가 생각하는 이대형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선수다. 꾸준히 풀타임을 뛸 수 있는 선수라는 얘기지. 잘 생겨서 인기도 많지 않냐. 대형이 같은 선수가 경기에 나가 잘 해주면 우리 팀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9월말이었나. 나랑 한 번 얘기 나눈 적 있지. 시즌은 이미 다 끝났으니 포스트시즌 준비 잘 해보자고. 요즘 대형이를 보면서 허문회 코치가 생각난다. 2000년이었을 거야. 계속 2군에 있다 시즌 막바지에 정말 몇 경기 안 남겨놓고 1군에 왔는데 우리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결정짓던 그날 싹쓸이 안타를 쳤지. 그 안타로 1년 설움을 한 방에 날렸던 기억이 있다.

대형이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가을에, 대수비나 대주자로 출전하더라도 경기 후반 타석에 선다면 그건 정말 중요한 타석일텐데 너는 한 방 칠 수 있는 선수니까. 대형이 안타로 플레이오프에서 우리가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짓는 기쁜 순간을 상상해본다. 그런 상황 준비 잘 하고 있으면 올해 속상했던 일들 모두 한 방에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F4들아. 내가 너희들을 F4라고 부르는 게 웃긴가봐. 김은진 기자가 굉장히 많이 웃는구나.

병규, 용택이, 진영이, 성훈이. 너희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가을야구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팀에서 너희들은 정말 꽃보다 소중한 존재들이다. 너희 4명이 잘 이끌어줘 우리가 이렇게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하는구나. 고맙다.

얘기를 들어보니 모두들 우리의 경험을 걱정한다. 내 걱정은 정작 다른 데 있는데…. 나는 추울까봐 걱정이다. 2002년 기억 때문인가봐. 한국시리즈를 11월에 시작했는데 눈도 왔었지. 그런데도 다들 반팔 입고 나가 공을 던졌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나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긴 소매를 입었다만.

모두들 마음 속에 긴장감을 조금씩은 갖고 있겠지만, 올해 지은 1년 농사 잘 마무리해서 우리 꼭 1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도 나가보자. 파이팅!

+LG가 마지막 가을야구를 했던 2002년이 자신의 야구인생에서도 마지막 가을야구일 줄 알았다던 류택현이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정리해보았다. 류택현은 이번 가을, 등판할 때마다 PS 최고령 기록을 세우게 된다. 대한민국 베테랑 류택현이 후배들과 만들어갈 감동의 가을야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