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에 불질렀던 분들 어디 계신가요?”

시원시원함은 여전했다. 현장에서 한발 비켜서니 오히려 책임감이 더해져 입을 다물 수 없다고 했다. 18일로 출범 100일을 맞은 ‘게임인재단’ 남궁훈 이사장(42)은 “너무나 어이없는 게임규제론을 들을 때마다 전보다 더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나오는 게임중독법은 과거를 살아온 분들의 시각에 맞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법안이 만들 세상을 사는 것은 미래 세대들이죠. 그렇다면 법안 제정에 아주 조심하고 숙고해야 합니다.”

남궁 이사장은 미래에는 게임이 결코 ‘게임산업’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며 인터넷을 예로 들었다. 그 어떤 산업도 인터넷과 무관한 게 없는 요즘이지만, 인터넷이 이렇게 될 줄 모르던 시절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 문화콘텐츠를 갖고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그 핵심은 게임이죠. 게임은 음악이나 영화보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종합엔터테인먼트이자 다른 산업 발전의 근간이 될 분야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중독법안이 얼마나 어리석고 시대에 뒤쳐진 것인지, 답답합니다.”

게임과 관련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입법의 대표적인 예가 게임시간을 강제로 규제하는 ‘셧다운제’다. 당시 일부 정치인들과 학부모 단체는 셧다운제만 시작하면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입법을 강행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규제와 비용부담만 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게임규제는 여전히 많은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남궁 이사장의 생각은 어떨까.

“예전 부모님들이 이렇게 말씀하곤 했죠.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고….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이 공부와 경쟁에만 올인시키는 요즘엔 게임이 그 나쁜 친구가 된 거죠. 한데 왜 그 친구를 사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눈을 감아버려요.”

그는 “게임도 교육 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게임을 하는 게 교육과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게임은 미래 산업의 핵심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을 최일선에서 다루는 분야라며 게임에 대한 이해가 미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다고 설명했다. 또 게임산업에서 파생될 산업이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게임을 다루는 학문 즉 ‘게임테크놀로지’의 등장도 머지않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게임인재단을 만든 것은 이에 대한 준비와 무관하지 않다.

“넷마블 대표 시절 어느 날 CJ E&M 회의에 갔더니 영화 쪽 대표가 ‘우리 영화인’이란 표현을 썼어요. 생각해보니 언론인, 방송인, 음악인… 등 다들 자긍심 담긴 단어가 있는데 게임은 그냥 ‘게임하는 애들’이더군요. 나름 규모가 당당한 산업인데 우리 위상이 그것밖에 안 되나 싶었죠. 우리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어야겠다 싶었고 연대의식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그가 게임인재단을 설립한 것은 지난해 12월. 설립하자마자 ‘힘내라 게임인상’을 제정해 소규모 개발사를 돕더니 벌써 3회차 모집에 돌입했다. 1회차 수상작인 <윙또>는 오는 25일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으로, 재단 설립 취지인 ‘선순환 구조’의 시발점이 될 것이란 기대다. 보통 사회공헌이나 재단법인이라고 하면 한걸음 업계에서 물러났다고 할 수 있지만 남궁 이사장만은 달랐다. 그야말로 광폭 행보다.

“짧은 기간에 비교적 많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카카오, NHN엔터 등 많은 회사들이 취지에 공감해 도움을 준 덕분이죠. 현재 추가적 지원을 논의하고 있어 연말까지 수상 혜택이 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단순히 상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업에 도움을 주고, 이것이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것입니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게임특성화고등학교 설립이다. 제도와 현실의 문제와 부딪혀 잠시 미뤄뒀지만 인재를 키우기 위한 꿈은 진행형이다. 게임인재단에서는 특성화 교육기관에 재학생 및 교사를 대상으로 교육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남궁 이사장이 게임 인재 양성에 열을 올리는 것도 게임이 선도하는 미래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사양 경쟁을 부추겨 PC산업을 일으켰듯 향후에는 교육·생활 등 다양한 분야와 게임의 접목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게임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위기죠. 정부가 어떤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져요. 미국의 외주업체로 전락한 애니메이션의 길을 갈 수도 있어요. 자녀 망치는 주범으로 몰아 만화책을 모아놓고 화형식을 하던 때도 있었죠. 이제 와서 지원한다고 진흥법 만들면 어쩝니까? 이미 다 죽어가는데. 그때 앞장서 불지른 분들 뭐라고 할지 정말 궁금하네요.”

게임업계 종사자들에 대한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게임은 진화하는 산업입니다. 피씨에서 모바일로 이어졌듯, 더 많은 플랫폼이 열릴 것이고, 우리의 가치를 인정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믿고 세계를 리딩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