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수 이지스게이밍네트웍스(AGN) 대표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지난 2월 ‘월드사이버게임즈’(WCG)의 갑작스러운 해체 이후 새로운 종합 글로벌 게임대회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닌 노력이 한 고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올림픽’을 목표로 지난 13년간 최고 권위의 종합 e스포츠 대회로 확고히 자리해 온 WCG의 갑작스러운 해체는 전 세계 e스포츠팬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게임사들이 개최하는 단일 종목 대회는 매년 규모를 키우고 있지만, 국가대항전 성격의 대회로는 WCG가 유일무이한 권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 전 세계 팬들로부터 아쉬움과 대회 개최를 바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WCG 운영총괄책임자이던 전 대표와 직원들이 뜻을 모은 끝에 지난 5일 ‘월드e스포츠 챔피언십게임즈’(WECG)의 공식 출범을 발표했다.

AGN은 오는 13일 파트너십을 맺은 글로벌 모바일게임연맹(GMGC)과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모바일 아시아 엑스포(MAE)에서 ‘WECG’의 공식 출범을 알리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비전과 방향 및 그랜드파이널의 톱 스폰서와 개최 도시, 종목 등의 윤곽을 밝힐 예정이다. 파트너십을 맺은 GMGC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공식 조직위원이던 데이비드 송이 대표로 있는 회사로, 중국을 대표하는 모바일 게임회사다.

전명수 대표는 기자회견을 앞두고 “7월 WECG 글로벌 챌린지를 통해 대회의 시작을 알리고 유럽, 미주, 아시아 전역에서 개최되는 지역 예선 대회를 진행한다. 세계 최고 기량의 e스포츠 스타들이 국가의 명예를 걸고 출전하는 그랜드 파이널은 올해 12월 개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상황을 간략하게 얘기하면.

“사실 WCG 해체 발표 후 GMGC 측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우리도 놀랐다. 투자는 문제 없으니 WCG 같은 글로벌 국가대항전의 틀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많았다.”

-고민이라면.

“1~2년 대회를 후원하다 말 거면 아예 생각도 말라고 답변을 보냈다. 그동안 게임사나 IT회사들이 홍보를 위해 일회성 대회를 하다 흐지부지된 것이 많지 않았나? 20년 이상 장기 투자에 대한 의지를 밝히라는 우리의 요구에 성의 있는 답이 왔다. 또 하나 우리의 요구는 홍보의 틀로만 게임대회를 바라보고 후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도 입장을 같이했다.”

-GMGC가 파트너로 나선 계기는.

“일단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을 지내기도 한 데이비드 송 대표가 e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그들 판단에도 e스포츠가 이제 기존 스포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글로벌한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매김하는 단계에 왔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대회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후원을 통한 파트너사의 위치만으로도 궁극적으로 홍보의 목적을 충분히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WCG의 후광이 컸다. 지난 13년을 이어온 노력이 헛된 게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WCG 해체 발표 후 전세계 게이머들로부터 자신들이 펀딩을 해서라도 도움을 줄 테니 반드시 대회를 유지해 달라는 메일이 쏟아질 정도였다.”

-일정이 촉박한데.

“첫 해인 만큼 규모는 약간 줄어들 수도 있다. 대륙별 예선을 별도로 치르는 대신 각국의 리그와 연계하는 방향도 모색하겠다. 또 상금으로는 결코 단일 종목 대회를 따라갈 수 없는 만큼 국가대항전 성격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무엇보다 WCG 이상의 대회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

WECG는 향후 독자적인 플랫폼을 통해 세계 e스포츠 선수들의 양성 및 발전적인 문화와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임을 밝혔다. 무엇보다 WCG 해체 이후 중국 군소도시를 중심으로 포스트 WCG를 표방하는 아류 대회들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WCG의 정통성을 잇는 WECG의 행보에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