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나아가기 쉽지 않은 세상. 청춘들이 스스로 ‘삼포세대’라고 칭하는 세상에서 노력이 정당한 대가와 평가를 받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묵직한 의미를 던진다.

서건창(25·넥센)은 지독히 노력하고도 자신의 전부라고 여겼던 야구로부터 버림받았다. 2007년 8월, 광주일고 3학년 서건창은 봉황기 대회를 치르던 중 서울의 숙소에서 컴퓨터 문자중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프로야구 신인 지명 드래프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2차 1번으로 ‘절친’이자 팀 동료인 정찬헌(LG)의 이름이 불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초조하고 막막한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순서에도 이름이 불리지 않았을 때, 같은 방 후배들도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서건창은 “그때 30분 정도 조용히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 화순고 김선빈(KIA), 동성고 노진혁(NC)과 더불어 ‘호남 내야수 3인방’이었다. 당시 고려대 감독이었던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서건창을 꼭 데려오고 싶었다”고 했다. 양 전 감독은 서건창의 어머니 정수현씨(51)를 만나 설득하기도 했다. 어머니 정씨는 아들에게 결정을 맡겼다. 서건창은 고려대 입학 대신 LG 신고 선수 입단을 택했다. 홀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볼 수 없었다. 서건창은 어머니에게 “꼭 프로에서 자리잡고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만만치 않았다. 노력의 양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부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LG는 해마다 ‘실험’이 계속되던 팀이었다. 부상 중인 신고 선수를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다. 서건창은 방출됐다. 야구는 그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광주의 부대에서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위병을 서는 동안에도 야구만 생각했다. 제대 뒤 돌아와 넥센의 문을 두드렸다. 입단 테스트 22명 중 유일하게 합격했다. 프로 2번째 도전이었다. 서건창은 “한 번은 실수, 2번째는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고 선수였기 때문에 등번호가 뒤로 밀려 111번이었다. 서건창은 그 번호를 두고 “좋은 숫자 3개가 나란히 선 번호라서 좋았다”고 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주목을 받았다.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다. 마침 주전 2루수 김민성이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선발 출전했다. 그 경기에서 두산 니퍼트를 상대로 짜릿한 2루타를 때렸다.

서건창은 2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타율 2할6푼6리에 39도루를 성공시켰다. 신인왕에 올랐다. 노력이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부족했던 출루율을 높이기 위해 타석에서 홈플레이트 쪽에 바짝 붙어서는 과감한 선택을 했지만 뜻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부상이 겹치는 바람에 출전 경기수와 기록이 모두 뚝 떨어졌다.

어쩌면 또 한 번의 실수였는지 모른다. 서건창은 2번째 실패를 막기 위해 다시 한번 ‘모험의 길’을 떠났다. 야구 선수에게 타격폼을 바꾸는 것은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서건창은 타격폼을 바꿨다. 두 손을 가운데 모은 채 보폭을 줄였다. 회전 때 속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스피드와 함께 타구의 힘을 키우려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달렸다. 방망이 무게를 20g 늘렸다. 지독한 노력이 함께였다.

서건창의 모험과 노력은 화려한 마무리를 가져왔다. 타율 3할7푼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3년 만에 타격왕에 올랐다. 135득점은 1999년 이승엽이 세웠던, 좀처럼 깨질 것 같지 않던 128득점을 15년 만에 넘어선 신기록이다. 무엇보다 ‘꿈의 기록’이라 불렸던 한 시즌 200안타를 넘어섰다. 서건창은 입단 3시즌 만에 리그 최고의 선수에 올랐다. 서건창은 18일 열린 2014 프로야구 정규시즌 시상식에서 전체 99표 중 77표를 얻어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서건창은 “어려울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왔던 것이 오늘의 영광을 만들어냈다”며 “작은 것 하나부터 실패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통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뛰었다”고 말했다.

서건창의 말대로 한 번은 실수지만, 2번째는 실패다. 그가 두 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은 것은 한 번의 실수에 대한 철저한 반성 덕분이다.

꿈의 기록과 최고의 자리는 실수와 실패 사이의 반성에서 나온다는 인생의 진리. 노력보다 상속이, 창조보다 모방이 더 쉽게 통하는 세상에서 서건창이 야구로 답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