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긴장이 됐죠. 마지막 장면인지 알고 했으니까요. 왠지 마지막 장면은 뭔가를 더 해야 할 거 같아서 부담이 많았어요. 제가 중심이 되는 장면이 아닌데도 NG를 냈어요. (이)정재 선배님이 ‘이 장면을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해주셨어요. 그러고 나서도 NG를 두어 번 냈죠.”

단역을 거쳐 단숨에 180억원대 제작비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 젊은 배우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그리고 자신이 결말을 지은 그 장면을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설렘과 흥분도 느껴졌다. 극장에서 영화를 네 번 봤다고 하지만, 실제로 머릿속에서는 몇 백 번을 상상했을까.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이정재)을 막판에 처단하는 명우 역을 연기한 배우 허지원은 숨도 안 쉬고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허지원은 장편 상업영화 출연 경험이 채 세 편이 안 되는 신예다. 게다가 이렇게 이름을 받는 경우는 거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암살>은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지금도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소감을 말하는 것 자체가 벅찬 느낌이다.

“주연은 아니었지만 출연했던 사람으로서 정말 얼떨떨했고요. 정말? 이런 느낌도 속으론 가졌어요. 친구들이 ‘천만배우다’라고 해주는데 당연히 쑥스럽죠.”

그는 당시 20대 새 얼굴을 찾기 위해 웬만한 신예들은 모두 도전장을 냈던 명우 역 오디션을 봤다. 극중 염석진의 오른팔인 명우는 나이가 19세였다. 하지만 그는 28세다. 그저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매달렸다. 그는 명우 역에 낙점된 이후 최동훈 감독으로부터 “카메라 앞에서 쫄지(?) 않는다”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이 배역 경쟁률이 100대 1이 넘었던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명우는 염석진 대장을 존경하고 동경해요. 그가 밀정(스파이)인 것을 확인하고도 대의를 위해 대장을 믿었다가 결국 치명상을 입죠. 이후 16년 만에 다시 만나는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싶어요. 턱에 큰 상처를 입어 거울이 보기 싫었을 테고, 사랑과 비례해 미움도, 분노도 커졌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이런 시간이 다 모여 결국 냉정하게 총구를 겨누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암살> 막바지 안옥윤(전지현)과 함께 한 염석진 저격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저잣거리 뒷골목을 벗어나 광활한 평야를 배경으로 휘적거리다 쓰러지는 이정재의 뒷모습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는 부담이 컸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촬영을 마쳤다.

“초반에 명우가 죽는 것처럼 나오는 바람에 지인들이 다 ‘이제 안 나오나보다’ 싶으셨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마지막을 장식해서 다들 놀랐다고 해주셨어요. 저에게도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요.”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06학번 출신으로 지금 이제훈, 변요한, 김고은, 임지연, 박소담 등 충무로와 안방극장에 밀어닥치는 ‘한예종’ 출신 배우의 행렬에 함께 서있다. 강원도 원주에서 초등학교 때까지 공을 찼던 그는 중3 때 선수의 꿈을 접고 연기의 매력에 강하게 끌렸다. 결국 공부를 잘 하면 서울 학교로 보내주겠다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킨 그는 20대를 배우의 열정으로 활활 태웠다. 그런 그에게는 말을 할 때도 동작 하나에 힘이 있고, 의지가 있었다.

“학교에서 처음 연기를 배울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배우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요. 저는 작품 속의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했죠. 그런데 선생님께서 ‘배우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대부터 삶을 그렇게 살았어요. ‘왜, 저럴까. 왜 그렇게 생각할까’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제가 청춘스타의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잖아요. 다양한 모습이 많다는 걸 장점으로 여기고 길게 보고 가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