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주현영의 직업은 성우(MBC 11기)다. 대학에서는 작곡을, 대학원에서는 공연영상학을 전공했다. 그 당시 우연히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보기 드문 라이팅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녀는 현재 방송국의 성우로서, 대중음악 작사가로서, 학생들에게 작곡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동물칼럼리스트로서, 그리고 두 마리의 강아지와 작곡가인 남편을 동시에 기르는(?) 주부로서…, 그야말로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주현영의 와일드 와일드 북(wild wild book)>은 음악과 동물을 사랑하는 그녀가 책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하는, 생명과 생명존엄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 열세째 이야기는 <동물을 깨닫는다>(버지니아 모렐 지음/곽성혜 옮김/추수밭)이다.

“붕어냐?”

머리가 나쁘거나 기억을 잘 못할 때 농담 삼아 쓰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물고기는 기억 능력이 불과 3초 정도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물고기는 자신과 같이 살며 먹이를 주던 사람을 잃었을 때 몇 달이나 그리워했다고 한다.

<동물을 깨닫는다>는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가 6년간 11개 나라에 있는 동물마음연구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동물들의 인식과 감정에 관한 보고서다. 저자는 우리에게 동물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책에는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교육을 하는 것을 넘어 평가까지 하는 개미, 자신을 돌보는 인간을 어떻게 골려줄까 궁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물고기, 놀이를 기다리며 웃는 쥐….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말 놀랍다. ‘정말? 진짜야?’를 연발하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세상에! 개가 1022개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 집에 버티고 있는 이 녀석들은 대체 뭐지? 다 알아들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가?’ ‘나방이 애벌레 시절을 기억한다고? 말도 안 돼. 그것을 믿으라고?’…. 책은 놀라운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동물들과 꽤 친하다고 생각한 나조차 인간우월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물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이 지능이 있고, 생각도 있으며,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새삼 동물들에게 진실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곧 화천 산천어축제가 열린다.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겨울 축제다. 산천어는 연어의 일종이다. 산천어는 영동지방에서 부화해 동해에 나가 살다가 알을 낳으러 다시 돌아오는 ‘파란만장한 삶’을 산다. 하지만 축제에 사용되는 산천어는 양어장에서 기르다가 축제 기간에 맞춰 화천천으로 옮겨 풀어놓은 것이다. 산천어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토사물을 내놓고 죽기도 하고, 기절하다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물고기 주제에 스트레스로 죽는다고?’라고는 반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사일생으로 축제기간에 잡혀 죽지 않는다고 해도 이들에게 자유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축제가 끝난 뒤에는 미리 설치된 그물에서 남김없이 포획돼 횟감으로 넘겨지거나 어묵의 재료로 쓰인다. 한 번도 자유롭고 건강하게 살지 못한 물고기가 사람 몸에 들어와선 과연 좋을까 싶다. 사람에 의해 생산된 산천어일지라도 살아남은 녀석들은 자연으로 방생해 주는 프로그램이면 좋겠다. 산천어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얼마 전 미국 조지아의 유기견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의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던 사진이 전 세계인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또 안락사 직전에 자신의 밥통을 다른 유기견에게 내어주는 개의 사진을 본 적도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주인의 장례식장에 나타나 사람처럼 서럽게 울던 개의 동영상도 있었다. 행동으로 보여준 그들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과 완전히 똑같았다. <동물을 깨닫는다>는 바로 이런 동물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모든 생명은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다. 인간 역시 언젠가는 죽지만, 그 마지막 날까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마음먹지 않는가? 그런 마음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자연계의 먹이사슬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도 자연의 일원인 이상 다른 생명을 먹잇감으로 삼아 종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도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생명 그 자체를 희롱하고 능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게다가 우리와 같은 마음도 있다는데?

인간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을 망각해 버린 인간이라면, 결국 인간 스스로의 생명마저도 가치가 없다고 여기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생명존엄성에 대한 문제는 결국 인간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터넷 판에 첨부된 음성파일은 본 칼럼을 쓴 성우 주현영의 목소리로 낭독됐습니다. 음성파일의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적극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