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귀화를 원하는 케냐 출신 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8·청양군청)가 국내에서 열린 마라톤 최고 기록을 세우며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다. 세계 최정상의 실력을 입증한 에루페의 귀화 문제가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된다.

에루페는 20일 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잠실종합운동장으로 들어오는 코스에서 열린 2016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5분13초의 기록으로 1위로 골인했다. 에루페는 자신이 2012년 이 대회에서 세운 종전 한국 개최 경기 최고기록(2시간5분37초)을 24초 앞당겼다. 에루페는 지난해에 이어 이 대회에서만 3번 우승했고,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6번 참가해 모두 우승하는 기록도 이어갔다.

한국 귀화를 위해 지난해 충남 청양군청에 입단한 에루페는 2시간3분38초의 개인 기록을 보유한 패트릭 마카우 무쇼키(케냐) 등 아프리카 강자들을 가볍게 제쳤다.

에루페는 경기 후 귀화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그는 “1년 동안 충분히 훈련했다. 마침 오늘 날씨도 좋아 좋은 기록이 나왔다”며 “다음에 내가 출전할 대회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라고 말했다.

귀화를 신청한 에루페는 아직 최종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월 법제상벌위원회에서 대한육상경기연맹(이하 육상연맹)이 요청한 에루페의 복수 국적 취득을 위한 특별 귀화 신청안을 심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에루페의 과거 금지약물 복용 이력이 문제가 됐다. 에루페는 2012년 말 도핑 테스트에 걸려 2년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고, 2014년부터 다시 경기에 나섰다. 에루페는 “당시 말라리아 치료 목적으로 쓴 약물 때문에 양성 반응이 나왔으나 케냐육상연맹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2년 징계를 내렸다”고 해명했지만, 대한체육회는 “주장을 증명할 추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

육상연맹은 지난달 추가자료를 체육회에 제출했다. 김돈순 육상연맹 사무국장은 “케냐 의료진이 당시 에루페에게 했던 진료기록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등으로부터 받은 에루페에 관한 모든 자료를 다 첨부했다”고 밝혔다. 에루페의 에이전트인 오창석 백석대 교수는 “이번 경기에서 에루페가 월등한 기량을 보였고, 도핑이 치료 목적이라는 걸 증명할 문서도 제출한 만큼 정상적인 절차대로 잘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통합체육회는 다음 달에 법제상벌위원회를 열어 에루페의 귀화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일부에서는 ‘도핑 관련 선수는 징계 만료 후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체육회 법무팀은 2012년에 적발된 에루페는 소급해 적용하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