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빈(24·강원도청)이 처음으로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월드컵 대회에 참가한 2014~2015시즌. 외국 선수들은 그에 대해 편견을 가졌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스켈레톤은 북미와 유럽 선수들의 전유물이었기에 아시아 선수들의 도전 자체를 무리로 봤다. 선수 대기실에서, 윤성빈은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을 홀로 감내해야 했다.

해프닝도 있었다. 2016년 2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2015~2016 IBSF 월드컵 7차 대회에서 윤성빈이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누르고 아시아 선수 최초의 월드컵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윤성빈의 금메달을 예상하지 못했던 주최측에서 애국가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애국가를 마련해오긴 했는데,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몰라 계속 틀었다. 결국 윤성빈은 애국가 4절이 다 나올 때까지 시상대에 서 있어야 했다.

설움과 편견을 이겨낸 ‘한국 스켈레톤의 기둥’ 윤성빈이 설날인 지난 16일 아침 마침내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썰매를 사상 처음으로 시상대 맨 위로 올려놨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한국 썰매가 기적적으로 만들어낸 쾌거였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은 경기 후 “이제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 얘기는 하지 말자. 향후 10년은 윤성빈의 시대”라고 공언했다.

윤성빈의 레이스를 현장에서 지켜본 경쟁자들조차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은메달을 따낸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의 니키타 트레구보프는 “윤성빈은 매우 강한 선수다. 훌륭한 기술과 놀라운 스타트 능력을 가졌고 차분하다. 정말 이상적인 스켈레톤 선수”라고 극찬했다. 동메달 수상자 돔 파슨스(영국)도 “윤성빈이 정말 압도적이었다. 굉장히 좋은 경기를 보여줬고 아주 놀라운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썰매가 세계 최강임을 완벽하게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윤성빈이 금메달을 땄어도, 냉정하게 말해 한국 썰매 종목의 인프라는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다. 훈련 환경은 물론이고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한국 썰매의 현주소다. 그런 점에서 윤성빈의 금메달은 향후 한국 썰매의 비약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당장 올림픽으로 인해 썰매 종목 경기를 할 수 있는 트랙을 갖게 된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 동안 동계체전에서는 썰매 종목 경기가 열리지 못했다. 그래서 실업팀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동계체전에 우리 종목이 들어가면 실업팀도 생길 것이다. 아울러 체전을 통해 선수들을 많이 육성하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김지수(성결대)의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윤성빈의 금메달은 또한 스포츠 과학의 중요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증명했다.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2014년 대한체육회의 지원 아래 한국스포츠개발원 민석기 박사팀과 힘을 합쳐 기존 훈련에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민 박사팀은 윤성빈이 월드컵 대회에 나설 때마다 보폭, 스타트 기록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대표팀과 공유했다. 훈련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유전자 분석을 통한 맞춤형 웨이트 프로그램을 통해 부위별 근육을 더 단련했다. 주행 후 쌓이는 젖산 수치도 따로 분석해 피로 최소화 프로그램도 따로 짰다. 이런 노력은 결국 한국 썰매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스포츠와 과학의 만남은 조화만 잘 이루어진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