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위기에 빠진 FC서울의 사령탑을 이어받은 최용수 감독(39·당시 코치)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2006년부터 플레잉코치로 시작해 5년 넘게 코치로 활동했지만 사령탑으로서 보여줄 지도력은 의문부호였다.

더욱이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로 알려져 언론, 팬과의 대외 활동도 잘 해낼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최 감독은 이런 우려를 일시에 씻어냈다. 경기장 안팎에서 일약 ‘히트상품’이 됐다. 지휘봉을 잡자마자 팀 분위기를 일순간에 반전시키며 순위를 끌어올려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또한 재치있는 입담으로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상상을 초월한 ‘내공’을 자랑했다.

이제 ‘감독 대행’이란 꼬리표를 떼고 정식 사령탑으로 날개를 편 ‘독수리’ 최 감독을 7일 일본 가고시마 전훈지에서 만났다.

“FC서울 감독이 됐을 땐 굳이 말을 안해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팀의 감독은 누가 오든, 어떤 상황이든 항상 우승이 목표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FC서울 감독은 국내 프로지도자 최고의 영광이지만 부담도 그만큼 크다. 전력과 상관없이 항상 팬들의 기대치와 관심이 높다.

최 감독은 “현재가 중요하다. 내년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올 시즌 우승에 모든 걸 걸겠다는 의지였다. “우리팀은 항상 상대의 도전을 받는 입장이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팀의 명성에 걸맞는 성적을 내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올 겨울 이적시장에서 서울은 의외로 조용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다름아닌 박태하 전 대표팀 수석코치(44)다. 최 감독은 박 코치보다 학번으로 3년이 늦다.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축구계에 ‘연하 감독, 연상 코치’는 흔치 않다.

“고민되긴 했지만 팀이나 나 자신을 봐서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틀에 박힌 사고나 인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또한 박 코치님은 나에게 없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선후배여서 서로 호칭은 최 감독, 박 코치님으로 부른다. 하지만 서로의 위치를 존중하는 상호관계다. 최 감독이 카리스마가 강한 지도력이라면 박 코치는 열정적인 내조자다. 전혀 다른 스타일이어서 오히려 조화로운 궁합이다.

최 감독은 “내가 더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내 사람을 중용하려고도 했지만 나한테도 발전이 있을까 생각했다. 배움의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코치도 최 감독에 대해 “선수 장악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다.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치밀하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지난 시즌 성남 일화 신태용 감독(42)과 함께 걸쭉한 ‘입심 대결’로 K리그의 맛깔나는 양념 역할을 자처했다. 졸업년도로 2년차 선후배지만 막역한 사이다. 올해도 두 사령탑의 입에 팬들의 귀가 쏠리고 있다.

최 감독은 신 감독이 최근 ‘나보다 최 감독의 입심이 한 수위’라고 했다고 전하자, “전진과 후퇴를 아는 지도자”라면서 “이젠 말을 아끼겠다”고 응수했다.

현역시절부터 ‘독수리’로 불리는 최 감독은 지난해 성남과의 대결에 앞서 ‘독수리가 여우(신 감독 별명)한테 이긴다’고 선방을 날렸다. 신 감독은 “독수리는 여우가 먹다 남은 것을 쪼아먹는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입씨름 끝에 전반기 경기에서 최 감독이 0-2로 완패했다. 후반기에는 서울이 3-1로 이겨 설욕했다.

최 감독은 자신의 소문난 화술에 대해 “특별히 준비하지는 않는다. 최연소 감독에게 팬들은 모범답안을 바라지 않는다. 내 생각을 과감하고 소신껏 얘기해 신선함을 주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하는 말은 분명 아니다. 최 감독은 “신문의 칼럼이나 사설을 자주 읽는다. 볼수록 재미있다. 정치·경제·사회 분야 기사도 많이 본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발상도 신선할 수 있다”고 말해 갈고닦은 ‘내공’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