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우승컵을 들고 돈 벌러 다녔죠.”

프로축구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46)은 극적으로 정상에 오른 지난 3일 FA컵 결승 2차전 이후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지도자로 첫 우승컵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내년 농사를 준비할 생각에 모기업과 스폰서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다고 했다.

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난 서 감독은 “간절히 바라던 우승을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다. 벌써부터 내년 우리 팀의 구성원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가 머릿 속의 첫 번째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정원 감독이 우승의 기쁨을 오롯이 즐기지 못하는 것은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뀐 뒤 해마다 구단 운영비가 줄어 핵심 선수들이 이탈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 시즌 우승 후보로 분류됐던 예전과 달리 요즘 구단 예산은 K리그 중간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연스레 그 빈 자리는 어린 선수들로 채워졌다. 수원이 올해 K리그 클래식에서 10월 말 강등권인 11위까지 떨어지는 악몽 같은 시기를 보낸 원인이다.

서정원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어떻게 처음부터 베테랑처럼 잘하겠느냐”며 “현장에선 미리 말을 했지만 피부에 와닿는 것 같지 않더라”고 한탄했다. 이어 그는 “내가 ‘죽을 사(死)’인 제4대 감독이라 이런 일을 겪는지 한탄하기도 했다”며 “내년에는 올해와 같은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원 감독이 믿는 구석은 그래도 모기업이다. 유소년 육성에 초점을 맞춘 구단의 정책을 바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기둥 노릇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읍소’하고 다니는 것이다. 수원은 내년에도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해야 한다. 서정원 감독은 “올해처럼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팬들이 이름도 모르는 선수가 대부분 출전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감독이 체면도 버린 소득은 있다. 수원이 국가대표까지 활약했던 미드필더 김민우와 올림픽대표 출신 미드필더 최성근을 일찌감치 영입한 것이다. 서정원 감독은 “두 선수가 입단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며 “두 선수 모두 어릴 때 지도한 경험이 있어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군에 입대한 풀백 홍철의 빈 자리가 남았지만, 올해보다 내년 전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희망은 얻었다.

기존 전력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 수원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3-4-3 포메이션을 가동할 때 매년 두자릿수 득점을 터뜨리는 산토스가 교체 요원으로 한정되는 상황을 벗어날 비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서정원 감독은 휴가도 반납한 채 10일 유럽으로 떠난다. 지난 겨울 스리백을 벤치마킹했던 유벤투스를 만들어낸 안토니오 콩테 첼시 감독의 경기를 현장에서 살피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얻겠다는 것이다. 서정원 감독은 “하루라도 축구와 떼놓을 수 없는 난 빵점짜리 남편이고, 아빠일지 모른다”며 “그래도 내년에는 올해와 같은 악몽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