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였다. 만 20세였던 2010년 6월3일 데뷔해 홈런 22개를 터뜨렸다. 1m98, 108㎏ 덩치 만큼 힘도 장사였다. 공을 부술 듯한 스윙에 걸리면 어떤 공이든 담장을 넘어갔다. 별명이 ‘빅 풋’이었다.

30홈런이 쉬웠다. 약물이 금지된 이후, 홈런 갈증을 풀어 줄 기대주였다. 2014시즌, 마지막 3주를 뛰지 않고도 37홈런으로 첫 홈런왕에 올랐다. 소속팀 마이애미는 시즌이 끝난 뒤 13년, 3억2500만달러(약 3700억원)라는 엄청난 계약을 안겼다. 지안카를로 스탠튼(28)은 메이저리그를 넘어 미국 프로스포츠 최대 계약의 주인공이 됐다.

문제는 그 해 마지막 3주를 쉬게 한 공이었다. 하필 9월11일, 건물에 날아와 부딪힌 비행기처럼 투구가 스탠튼의 왼쪽 얼굴로 날아왔다. 뼈가 부러졌다. ‘검투사 헬멧’을 쓰고 돌아왔지만 홈런 숫자가 쉬 늘지 않았다.

부상도 계속됐다. 2015시즌에는 왼 손바닥 유구골이 부러져 수술을 해야 했다. 2016시즌에는 왼쪽 허벅지 안쪽을 다쳐 23일이나 경기에서 빠졌다. 홈런은 각각 27개에 머물렀다. 3억달러가 넘는 계약을 한 터라 팬들의 시선이 싸늘했다. ‘부상 병동’에 ‘먹튀’라는 비난이 따라다녔다.

2017시즌 초반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양키스 신인 거포 애런 저지가 전반기 30홈런을 때리면서 관심을 독차지했다. 스탠튼은 5월까지 홈런이 겨우 14개였다.

극적인 변화가 5월 중순 이후 찾아왔다. 첫 번째 변화는 타순의 전진 배치. 마이애미 돈 매팅리 감독은 스탠튼을 지난 5월23일 경기부터 2번에 배치했다. 발 빠른 1번 디 고든 뒤에 나오면서 더 많은 속구를 상대할 수 있었다. 5월22일까지 홈런 11개였지만 이후 73경기에서 33개를 때렸다. 전체 투구 중 49%였던 속구 비중이 53%로 늘어난 덕분이다.

더 큰 변화는 6월 중순부터였다. 2014년 투구에 얼굴을 맞은 뒤 스탠튼은 ‘검투사 헬멧’을 쓴다. 몸쪽 공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떨치기 위해 홈플레이트에서 조금 떨어져서 타격했다. 몸쪽 공은 해결했지만 멀어진 바깥쪽 공이 문제였다. 바깥쪽 공에 대한 장타율이 0.358까지 떨어졌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스탠튼은 6월20일 부터 왼발을 1루쪽으로 집어넣고 서는 클로즈드 스탠스를 시작했다. 왼발은 점점 더 깊숙히 들어갔고 8월이 되면 아예 투수가 스탠튼의 등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틀었다. 바깥 쪽에 대한 약점이 사라졌다. 올 시즌 바깥 쪽 공에 대한 장타율은 0.542나 된다. 6월20일 이후 50경기에서 스탠튼은 홈런 27개를 때렸다. 같은 기간 OPS(출루율+장타율)가 1.184나 된다.

스탠튼은 17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홈런을 추가하지 못하면서 연속경기 홈런이 6에서 멈췄다. 대신 스탠튼은 이날 “61홈런을 목표로 뛰겠다”고 새 기록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배리 본즈가 2001년 기록한 73개. 마크 맥과이어(70개), 새미 소사(66개) 등이 모두 61홈런을 넘게 때렸지만 ‘약물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금지약물 규정 이후 최다 홈런은 라이언 하워드가 2006년 기록한 58개다. 약물에서 자유로운 최다 홈런은 1961년 로저 매리스의 61홈런이다.

스탠튼은 “어릴 때 부터 베이브 루스, 미키 맨들, 로저 매리스 등의 영화를 보고 자랐다. 61홈런은 아주 상징적인 기록”이라고 말했다. 약물 시대의 기록은 오염됐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기록은 기록이지만”이라고 답했다. 순수 61홈런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공표한 셈이다.

팬들도 스탠튼의 홈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 32경기 20홈런의 페이스라면 73홈런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시즌 전체의 페이스만으로도 61홈런이 가능하다. 부상과 비난이라는 ‘지옥’을 겪고 돌아온 스탠튼이 메이저리그의 새 홈런 역사를 위해 본격적인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