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LG의 좌완 에이스로 활약한 외국인투수 라벨로 만자니오는 1963년생으로 그해 나이 39살이었다. 만자니오는 그해 11월 기온이 뚝 떨어진 채 열린 포스트시즌에서 반팔 언더셔츠를 입고 등판할 만큼 파이팅이 넘쳐 ‘열혈남아’로 통했다. 그러나 만자니오는 실제 나이로 마흔을 훌쩍 넘었다는 얘기가 근거 있게 돌 정도로 고령의 선수였다. 몸을 아껴야할 나이였다.

2000년 삼성 외국인타자였던 훌리오 프랑코 역시 1961년생으로 39살의 나이로 KBO리그에서 뛰었다. 그해 성적은 타율 0.327에 22홈런 110타점. ‘국민타자’ 이승엽 등이 버티던 삼성 타선에 힘을 보탰다. 또 2008년과 2009년에는, 1971년생으로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던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LG 유니폼을 입고 확실한 3할 타자로 타선을 이끌었다. 그의 두 시즌 타율은 0.338로 빼어났다.

이렇듯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30대 후반에서 나이 마흔에 이르는 선수를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른바 나이 꽉찬 베테랑 외국인선수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두산 외국인투수였던 더스틴 니퍼트(36)와 NC에서 뛴 에릭 해커(34) 역시 만자니오나 프랑코 등 앞선 시대의 외국인선수들에 견주면 ‘동생뻘’이지만, 벌써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듯 리그에서 밀려나고 있다.

나이 어린 선수를 선호하는 KBO리그 각 구단의 움직임이 외국인선수 영입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 구단이 ‘젊음’을 우선시하고 있다.

14일 현재 각 구단이 새롭게 영입한 외국인선수는 총 8명. 1991년생으로 올해 나이 26살인 한화 외국인투수 키버스 샘슨부터 1987년생(30세)인 롯데 새 외국인투수 펠릭스 듀브론트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평균 나이는 20대 후반이다.<표 참조>

대부분 구단은 ‘용병’이란 이름으로 한 시즌 내내 뛸 수 있는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 결과, 젊고 싱싱한 팔과 다리를 가진 선수 영입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거의 매시즌 외국인선수의 부상으로 고민이 컸던 한화는 ‘젊은 선수’를 영입하겠다고 공표한 뒤 실행에 옮겼다. 샘슨과 짝을 이뤄 선발진을 끌어줄 외국인투수 제이슨 휠러 역시 1990년생으로 이제 27살에 불과하다.

내년 시즌 임기 첫 해를 맞는 한용덕 한화 감독은 “기본적으로 내구성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아프지 않고 꾸준히 선발로테이션을 지켜줄 수 있으면 승수 같은 기록은 따라오게 돼있다”며 외국인선수 나이에 주목한 이유를 설명했다.

젊은 외국인선수 영입이 수월해진 것은 각 구단이 외국인선수 영입에 투자하는 비용 상승에 기인하기도 한다. 과거 KBO리그를 찾은 30대 중·후반의 외국인선수들은 메이저리그를 향한 꿈을 더 이상 키우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기회 비용’이라고 할 것이 따로 없어 영입 자금이 크게 늘어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각 구단은 1선발로 쓸 자원이라면,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선수 입장에서는 젊은 나이에도 메이저리그 꿈을 살짝 미룰 수 있을 만큼 KBO리그가 매력적인 곳이 돼가고 있다.

경험으로만으로 통하지 않을 만큼 KBO리그가 강해진 측면도 있다. 과거에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두루 거친 선수라면 전성기를 한참 지났어도 큰 무대에서의 경험과 축적된 기술로 KBO리그 선수들과 상대할 만했지만, 이제는 기본적으로 힘과 기술에서 구체적인 경쟁력이 없으면 버티기 어렵다.

두산에서 7년간 94승을 따낸 니퍼트가 올해 후반 시속 150㎞를 찍으면서도 볼끝의 무뎌지자 난타당하는 장면이 늘어난 것 또한 KBO리그의 외국인 선발 기준과 맞물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