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의 영광, 생일, 군 전역.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는 축복의 자리인데 황인범(22)은 기쁨보다 착잡함이 앞섰다. 불투명한 동료들의 미래부터 걱정했다. 그는 자신의 영광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계속 팀원들을 걱정했다.

황인범은 20일 아산 경찰 무궁화 축구단을 떠났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특례 혜택으로 이날 조기 전역했다. 당초 행정 절차가 10월 초에나 끝날 것으로 예상됐으나, 경찰청이 선수 선발중단을 갑작스레 발표한 것처럼 전역도 순식간에 결정됐다.

황인범은 전역식 직후 아산 구단 사무실에서 진행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어제 갑자기 전역 결정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웠다”면서 “오는 29일 홈경기가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돼 팬들에게도, 팀원에게도 미안하다. 오늘이 생일인데…이별도 준비의 시간이 필요한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황인범은 “생일에 전역을 해서 좋으면서도 아쉽다. 팀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떠나 형들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말했다. 구단 관계자는 황인범은 전역식에서 팀원들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12월, 다들 왜 그리 빨리 군에 가느냐고 했다. 해외 진출 실패와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해서 입대를 결정했는데 경찰 축구단에 온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9개월간의 군생활이었지만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추억을 쌓았다. 여기 남은 형들이 남은 생활 축구를 계속 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황인범은 갑작스런 선수 선발 중단으로 해체의 기로에 내몰린 팀에 해결책이 마련되길 진심을 다해 기원했다.

이 때문에 황인범이 아시안게임 영광을 얘기하기까지엔 시간이 좀 필요했다. 황인범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의 중원사령관으로 맹활약했다. 탁월한 개인 기술과 높은 수준의 전술 이해를 바탕으로 대표팀의 공수를 지휘했다. 그는 “지난해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오직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삼았다. 남몰래 더 많이 훈련하고 노력했다”며 “힘들었지만 결과가 좋아 웃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같은 또래 친구들과 많은 추억도 쌓았다. 축구 인생을 넘어 내 인생 전체에서도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로 기억될 것 같다”고도 했다.

황인범이 꼽은 잊지 못할 순간은 역시 우즈벡과의 8강전이었다. “정말 정신적으로 압박감이 컸다. 몸도 힘든데 2-1로 앞서다 2-3으로 역전됐을 땐 정말 멘붕이 왔다. 어떻게 헤쳐나갈지 막막했지만 우선 끝까지 뛰자고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간절함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

황인범은 일찌감치 K리그 팬들 사이에선 기술이 뛰어난 재간둥이 미드필더로 꼽혔다. 하지만 2부리그에 있는 탓에 많은 사람들에겐 알려지진 않았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떨쳤다. 그는 “사람들이 ‘쟤는 뭔데 대표팀 10번을 다는가’라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더 독기를 품고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내가 누군지 이름을 알려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대회 경기력에 100% 만족하진 않지만 많은 분들이 관심을 받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전 1000여명이었던 황인범 소셜미디어(SNS)의 팔로어는 이제 2만8000명이 넘는다. 많은 팬이 생겨났다. 아시안게임의 활약을 발판으로 파울루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아 A대표팀까지 데뷔하며 질주하고 있다.

금메달의 영광으로 조기전역한 황인범은 이제 원소속팀 대전시티즌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K리그2(2부리그) 최하위 대전은 올 여름부터 무서운 상승세로 최근 8경기 무패(6승2무)로 4위로 올라섰다. 황인범의 합류는 대전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 산하 유스 중·고교를 나와 대전에 입단한 그는 친정팀에 힘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부담도 되지만 팀의 승격에 힘을 보태고 싶다. 아산도 함께 승격해서 내가 뛴 두 팀이 모두 1부리그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 22세의 젊은피 황인범은 또래에 비해 빼어난 발기술과 테크닉을 보유했다. 남모른 노력의 결과였다. 황인범은 “어릴 때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게 좋았다. 잘 때도 공을 껴안고 잤다. 공에 대한 집착이 커 벽에 튀기고 턴 동작도 혼자 개인훈련으로 했다”고 말했다. 황인범은 묵묵히 노력해 키운 재능을 더욱 갈고 닦아 전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큰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비난도 받을 수도 있다. 더 노력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겸손히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황인범은 “큰 꿈은, 언제가 될지 몰라도 유럽에 나가는 것이고, 소속팀에서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 A대표팀에 뽑혀 영광스런 자리를 하는 것”이라면서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예비역이 된 황인범의 축구는 이제 더 높은 비상을 위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그는 변함없는 최선과 겸손으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