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은 제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양궁 하면 김진호, 김진호 하면 양궁이었죠.”

한국 여자양궁의 신화를 개척한 ‘원조 신궁’ 김진호 한국체육대학교 교수(57)가 2018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대한체육회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79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 1983 LA 세계선수권 5관왕, 1984 LA 올림픽 동메달, 1986 서울 아시안게임 3관왕에 빛나는 김진호 교수는 1960~1970년대 국민의 애환과 함께 했던 프로레슬러 김일(작고)과 함께 올해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됐다.

김진호 교수는 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파크텔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스포츠영웅 헌액식에서 “그 척박한 시기에 양궁을 도입하고, 불모지를 개척해주신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저는 그 뒤에서 열매를 따고 꽃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양궁계 전체와 기쁨을 함께 하면서 “다른 종목에도 훌륭한 스포츠 스타들이 많이 계신데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돼 무한한 영광”이라고 인사했다.

선수 김진호는 1970~1980년대 세계 양궁의 슈퍼스타였다. 중학교 2학년때 처음 활을 잡은 김진호는 예천여고 1학년이던 1977년 최연소 국가대표에 뽑혔고, 이듬해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따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이후 김진호는 세계선수권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서 언제나 세계 최고였다. 개발도상국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게 많지 않았던 그 시절, 김진호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전국민에게 기쁨을 선사한 진정한 영웅이었다.

자타 공인의 월드스타지만, 올림픽과는 인연이 적었다. 동서 냉전 속에 미국이 주도한 서방국가들의 보이콧 결정으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고,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개인전 동메달에 그쳤다.

“모스크바 때는 올림픽에 못 간다는게 실감나지 않았다. 조금 지나고 나니 그 때가 절호의 기회였고, 최고의 전성기였다는 생각에 안타까움도 남았다. LA 올림픽 때는 양궁협회 차원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한 달 전에 떠났는데 체력이 강하지 않았던 나에겐 그게 역효과를 냈다. 선수생활 최악의 컨디션으로 그나마 동메달을 땄고, 서향순이 금메달을 따줘 다행이었다.”

김진호 교수는 “그런 컨디션으로도 동메달을 땄으니 제가 얼마나 잘 한 거냐”고 농담하며 밝게 웃었다. 김 교수는 “그 때는 너무 아쉬워서 한 동안 활을 잡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돌아보니 동메달 또한 내겐 너무 소중했고, 그로 인해 인생을 배우고 겸손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모든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안하무인이었던 내게 패배자의 마음을 알게 해줬다”고 했다.

LA 올림픽 이후 활을 놓았던 김진호를 설득해 다시 사대에 세운 이는 어머니였다. “몇달 지나고 나니 어머니가 ‘한 번만 더 잘 하고 그만 두면 괜찮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셔서 86년 아시안게임까지 선수생활을 하기로 했다.”

86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른 김진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활을 놓았다. 1988 서울 올림픽에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 때 은퇴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해요. 김수녕이란 스타가 나왔고, 이후 후배들이 계속 한국 양궁의 전통을 이어주었잖아요.”

은퇴후 한국체육대 대학원에 진학해 1995년부터 모교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인생도 양궁에서 배웠다. 화살이 바르게 날아가야 10점에 꽂히듯이 바르고 정직하게 살자는 인생관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