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 선발 크리스 플렉센(26)은 포효했다.

두산이 3-0으로 앞서던 6회초 2사 1루에서 LG 4번 타자 로베르토 라모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은 뒤 마치 한 마리 불곰처럼 온힘을 모아 크게 소리를 질러 쾌감을 드러냈다.

가을야구 베테랑인 동료 유격수 김재호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촌스럽게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아서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아직 20대, KBO리그는 첫해, 긴장했던 가을야구 첫 무대에서 11개 삼진을 잡아내고 포효하던 그 경기는 ‘플렉센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2020년 가을야구를 지배하고 있는 플렉센이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줄 모습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고 있다.

플렉센은 18일 열리는 NC와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한다. 이번 포스트시즌을 플렉센이 완전히 지배할 수 있을지 가늠할 경기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이닝 11삼진 무실점으로 승리한 플렉센은 KT와 플레이오프에서도 1차전에 나가 7.1이닝 11삼진 2실점으로 역투를 펼쳤다. 4차전에서는 7회 등판해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두산의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었다.

이 세이브로 인해 한국시리즈에서는 올해 20승을 거둔 에이스 라울 알칸타라에게 1차전 등판을 넘겼지만 플렉센은 현재 누가 봐도 두산에서 가장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하고 있다. 시속 150㎞ 이상 빠른 공에 낙차 큰 커브를 앞세워 슬라이더, 체인지업까지 다양한 변화구를 더한다.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힘 좋은 직구 위주 피칭으로 탈삼진 행진을 펼쳤고 플레이오프에서는 변화구 비중을 늘려 맞혀잡는 투구를 하면서도 빼어난 제구로 스트라이크존 안에 쏙쏙 공을 집어넣었다. 위력적인 구위에 제구까지 완벽한 지금 플렉센에게 맞설 타자가 없어보였다.

NC는 플렉센이 정규시즌에서 3차례 이상 상대한 팀 중 유일하게 승리를 거두지 못한 팀이다. 3경기에서 18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3.00으로 1패만 안았다. 9개 팀 중 가장 많은 16안타를 허용한 상대이기도 하다. NC는 정규시즌 타율 2위(0.291) 팀이다. 다만 시즌을 마치고 청백전 외에는 보름 넘게 쉬어 절정에 올라있는 플렉센을 공략하기에 실전 타격감이라는 큰 변수를 안고 있다.

한국시리즈는 길면 7차전까지 승부해야 한다. 1·2차전에 나가는 외국인 투수는 2차례 선발 등판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첫 등판에서 기선 제압할 경우 두번째 경기는 더 수월해질 가능성이 높다. 플렉센이 2차전에서 NC 타자들을 얼마나 압도하느냐, 반대로 NC 타자들이 플렉센을 어떻게 공략하느냐는 시리즈의 향방을 가늠할 가장 큰 열쇠다.

플렉센은 플레이오프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MVP를 차지한 외국인 선수는 간 단계별로 통틀어서도 플렉센이 8번째밖에 되지 않는다. 투수는 4번째였다. 특히 우승이 결정되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결정적인 홈런이나 결승타를 친 타자들이 대부분 수상해왔다.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차지한 외국인 선수는 2000년 톰 퀸란(현대), 2001년 타이론 우즈(두산), 2014년 야마이코 나바로(삼성)까지 3명뿐이다. 모두 타자다.

지금까지 포스트시즌 MVP를 두번 차지한 외국인 선수 역시 한 명도 없었다. 플렉센이 플레이오프까지 보여준 모습대로라면 한국시리즈에서도 다시 MVP까지 도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2차전을 잘 출발한다면 포스트시즌 외국인선수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