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투수 김백만(25). 지난해 불펜에서 뛰다 2군으로 내려간 그에게 “이럴 때 미안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아버지와 이상번 코치님”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9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부산고 시절 스승인 이상번 코치. 좌절했을 때마다 그를 일으켜 준 인생의 두 은인이라고 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1998년. 부산고 1학년이던 김백만은 세상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아버지를 여의었다. 당뇨합병증을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고 김한중) 생각에 더 이상 야구를 할 수가 없었다. 김백만은 어릴 적 태권도 선수였다. 태권도협회 이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하얀 도복을 입었다. 어릴 때부터 여러 무술을 익힌 형은 지금 UDT(해군특수전부대) 중사다. 그렇게 유단자 가족에서 자란 막내 김백만도 당연히 태권도 선수로 자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태권소년이 흰 야구공에 빠졌다. 부산 개성초등학교 6학년이던 94년.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야구하던 꼬마 김백만이 양정초등학교 진용근 감독 눈에 띄었다.

“야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야구가 좋았던 꼬마 김백만은 그 자리에서 ‘OK’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까지 심하게 반대했지만 울며 불며 야구하게 해달라는 막내아들에게 결국 손을 들었다. 그렇게 유니폼을 입기 위해 집에서 1시간 반 거리인 양정초등학교로 전학까지 갔다.

반대하셨던 아버지도 “소질이 있다”는 감독의 말에 지원자가 됐다. 그 먼 거리를 매일 오가며 뒷바라지해주셨다. 하지만 중3 때부터 가세가 기울더니 1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태권도 선수가 되기를 바라시던 아버지를 거역하고 야구하겠다고 고집부린 것이 너무도 후회스럽고, 견딜 수 없었던 김백만은 야구를 그만두겠다며 그라운드를 뛰쳐나와 버렸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때 잡아준 사람이 이코치였다. 집까지 찾아와 “네가 선택했으니 끝까지 하라. 성공한 모습을 아버지께 보여드려라”는 이코치의 말에 김백만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 글러브를 끼었다. 중학교 때까지 유격수였던 김백만을 투수로 만든 것도 이코치다.

97년까지 롯데에서 선수생활을 한 뒤 막 아마야구 지도자로 데뷔한 이코치는 김백만을 유난히 예뻐했다. 직구 외에는 던질 줄 아는 게 없던 김백만을 매일 붙잡고 가르쳤다.

투구 폼부터 밸런스 잡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맨투맨 지도를 했다. 투수로 전업한 김백만에게 이코치는 ‘투수의 맛’을 알게 해준 은인이었다.

그렇게 김백만을 잡아준 이코치는 동의대 코치로 옮긴 뒤에도 제자에 대한 정을 놓지 않았다.

2000년 대통령기고교대회. 왼손 추신수와 함께 부산고 에이스였던 김백만은 예선에서 38이닝 연속 무실점 행진을 이으며 쾌투했다. 그러나 속초상고와의 8강전에서 중간 등판해 동점홈런을 맞고 무너졌다. 다행히 팀은 이겼지만 부산에서 이 모습을 TV로 지켜본 이코치는 다음날 서울로 올라왔다. 덕수상고와의 4강전 선발 투수가 김백만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경기는 잊고 최선을 다해라”는 한마디를 위해 서울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부산고는 우승했다.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김백만은 지금 하와이 전지훈련 명단에서 빠져 대전에서 훈련하고 있다. 전지훈련에서 제외된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12월에도 개인트레이너까지 고용해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기에 실망도 컸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와 선생님을 떠올리며 올해에는 반드시 마운드에서 보답하리라 오늘도 다짐하고 있다.

〈김은진기자 muldero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