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31·아르헨티나)는 킬리안 음바페(프랑스)를 가볍게 안았다. 축구의 현재가 미래의 ‘황제’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극적인 의미만큼 따뜻함은 없었다.

메시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패전의 고통도, 의례적인 미소도 없이 눈만 날카롭게 빛났다. 메시는 무거운 짐을 벗어내기라도 하듯 주장 완장을 떼어냈다. 그리고 터벅터벅 터널로 걸어들어갔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메시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메시의 월드컵이 또 한 번 잔인하게 막을 내렸다.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1일 끝난 프랑스와의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에서 3-4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몇 시간 뒤 포르투갈이 우루과이에 1-2로 패하면서 또 한 명의 슈퍼스타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의 월드컵도 끝이 났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5번씩 발롱도르를 양분하며 클럽 레벨에선 그 누구도 어깨를 나란히 하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메시와 호날두지만 월드컵과는 끝내 인연을 맺지 못했다. 4차례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토너먼트 경기에서 단 1골도 기록하지 못한 것도 메시와 호날두의 공통점. 메시는 8경기 756분을 뛰면서 23개의 슛을 날렸지만 하나도 골네트를 가르지 못했다. 호날두는 6경기 514분 동안 25개의 슛을 때려 0골. 어려울 때마다 ‘짠’ 하고 나타나 클럽을 구하고, 대표팀을 구했던 메시와 호날두였지만 월드컵 토너먼트 무대는 그들에게 ‘영웅 전설’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직 공식적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둘 모두 4년 뒤를 기약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요한 크루이프 클럽’에 가입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크루이프 클럽은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월드컵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선수들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인물이 ‘토털축구’의 화신으로 세계 축구계에 혁명을 일으킨 풍운아 크루이프다. 1974년 월드컵 결승서 서독에 1-2로 지면서 토털축구의 신화를 완성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빗장수비’를 상징하는 파울로 말디니도 ‘무관의 제왕’이다. 역대 수비수 중 최고로 꼽히는 말디니는 세리에A 7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 등 숱한 트로피를 수집했지만 월드컵에선 운이 따르지 않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서 브라질에 승부차기로 진 게 가장 아까웠다. 조지 베스트도 빼놓을 수 없다. ‘마라도나는 뛰어나고(good), 펠레는 더 낫고(better), 조지가 최고다(best)’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천재적인 드리블러였던 베스트는 고국인 북아일랜드가 약체여서 월드컵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들 외에 1950년대 헝가리 무적함대를 이끈 푸스카스, 프랑스 아트사커의 원조인 미셸 플라티니, 포르투갈의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 ‘하얀 펠레’로 불렸던 브라질의 지코도 ‘크루이프 클럽’의 회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