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의 노래(비마이너 기획 / 홍은전 지음 / 훗한나 그림 / 오월의봄)

작년 3월,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 세운 전장연의 대표 박경석에게 여당 대표 이준석이 말했다. “이만하면 많이 나아졌고 정부도 노력하고 있으니 기다리라.” 박경석은 되묻는다. “언제까지 기다리랴?”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장애인은 집이나 시설을 나서기까지 수년 수십 년을 기다렸다. 장애인이 사회와 단절됨이 당연하지 않음을, 장애인의 생활이 개인과 가족만의 책임이 아님을 깨닫기까지 그 세월이 소요됐다. 깨달은 이상 그들은 싸우러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자기 자신으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들의 싸움이 아니었더라면 더욱 숨겨졌을, 그들과 같은 소중한 사람들을, 그 소중한 하루하루를 덜 잃게 됐으니까.(서경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박솔뫼·안은별·이상우 지음 / 민음사)

서점에서 일기장을 주웠다. 두 소설가, 연구자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 정해진 형식도 주제도 없이 각자의 위치(서울, 도쿄, 베를린)에서 쓴 글로 가득한. 그 안에는 음악이 있고, 영화가 있고, 책이 있고, 사람이 있다. 가만 읽다 보면 여기가 서울인지 도쿄인지 베를린인지 모른다. 사실 장소 자체가 주는 특별함은 없음을, 그곳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경험과 생각만이 있다는 것을, 진짜 특별한 건 그것들의 차이 혹은 비슷함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뿐이다. 파편처럼 존재하던 날것의 영감을 그대로 담아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 엮었다는 것, 읽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현다연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듀나 지음 / 제우미디어)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모르고 지나쳤던 클리셰를 소개한다. 그러나 단순한 클리셰의 나열이 아니다. 연출과 장치로 가려져 자연스레 넘어갔던 고정관념과 교묘한 억압 기제가 작가의 위트와 함께 드러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거나 울며 봤을 수많은 영화 속의 클리셰에는 조용한 편견과 억압이 담긴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과 그곳에서 나오는 클리셰를 여과 없이 지적한다.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를 보고 있노라면, 미디어가 혐오와 편견을 어떤 장치를 통해, 어떻게 재생산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스스로 반문한다. 이제는 여자 주인공도 가능할까?(윤인혁 / 사회문화비평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독서 주방 - 불과 칼 사이에서 따뜻한 책읽기(유재덕 지음 / 나무발전소)

요리사 유재덕은 독서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영리한 선택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독서주방’은 책을 읽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 인생에 얼마나 멋진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소소한 일상 속 모든 국면을 삶의 깨달음으로 연결해 가는 풍경은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일상독서의 효과를 이보다 더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

유재덕의 문장은 아름다운 식칼과도 같다. 예리하지만 온화하다. 그 어떤 것도 자르고 벨 수 있지만, 그것이 만들어 내놓는 것은 결국 따뜻한 한 그릇의 음식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향기처럼 배어 있는 그의 문장은 명품 요리처럼 독자들의 가슴을 부드럽게 움켜잡을 것이다.(김성신 /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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