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에서 시작한 일이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사람들에겐 웃음과 탄성을 끌어냈다. 불꽃연출가 유지곤씨(32)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어릴 적 오줌 지리는 불장난이 오늘 불꽃연출가의길을 예지했다고나 할까. 잔업이 이어지는 쳇바퀴와 같던 직장 생활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나와, 대출받은 200만원으로 문을 연 ‘장난’ 같은 창업이 한마디로 대박을 일궈내 10년만에연매출 10억원의 회사로 키웠다. 500배의 성장세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밤하늘 불꽃같이 성공을 수놓은 비결은 하고 싶은 일을 일찌감치 찾고, 그것을 위해 불사른 불꽃같은 투혼이었다.

# 불꽃연출가, 인생의 황금기를 연출하다

불꽃연출가는 여전히 생소한 직업이다. 폭죽은 예로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지난 시절 축제란 게 내용도 부실하고, 진행도 주먹구구식이라 사실 별 재미도 없었다. 결국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불꽃놀이 차지였던 때가 많았다. 그렇고 그런 지난 시절 축제에 불꽃놀이의 위상을 확고히 한 사람이 바로 유지곤씨다. 불꽃 관련업계 3세대이자 불꽃연출가 시대의 문을 연 1세대라 말할 수 있다.

“60대가 주류인 1세대는 대개 폭죽 수입업자였고, 전근대적 방식에 머물며 불꽃을 연출하던 2세대는 40~50대가 주축입니다. 그 뒤를 이어 불꽃연출가가 등장한 거죠. 축제의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한 밤하늘의 불꽃을 연출하는 사람들이죠. 이색직업이지만 전국적으로 축제가 급증한 덕에 직업적인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밤하늘에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인 불꽃연출가는 불꽃을 관리하고 쏘아 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 역할을 겸임해야 합니다. ‘스카이 아티스트’, ‘연화사’ 등으로도 불립니다.”

유씨의 삶은 불꽃연출가의 꿈을 위해 매진해온 입지전으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천직이 됐다. 하지만 불꽃을 만난 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원래 대덕연구단지의 벤처기업에서 장비를 개발하는 일을 했어요. 업무량이 얼마나 많던지, 집에 가물에 콩나듯이 가는 생활이 이어졌죠. 회의가 밀려왔어요. 너무 짜증스러워, 어릴 적 좋아하던 폭죽이나 터뜨리며 기분전환을 하려고 월급의 반을 ‘질러’ 60~70만원 어치 장난감 불꽃을 사서 터뜨렸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거예요. 갑자기 이 일을 해볼까하는 생각에 마이너스 통장으로 200만원을 대출받아 불꽃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 때가 22살이었다. 사업계획안도, 사업에 대한 검토도 없었다. 어쩌면 현실 도피적 불장난이었는지도 모른다.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우연으로 이어진 그의 방향전환은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 불꽃의 역습, 불꽃이 너무 일찍 터졌다

2003년 창업 초기 한 대학 축제에서 큰 사고를 겪었다. 된서리도 이런 된서리가 없다. 사고는 첫번째 행사에서 벌어졌다. 행사를 따냈다는 기쁨도 잠시, 200여 발의 폭죽이 유씨의 몸을 난타한 것이다. 적지않은 폭죽이 그의 얼굴과 몸에 박혔고 그를 향해 달려든 화약의 힘은 온몸을 보랏빛으로 그을려 놓았다. 몸 이곳저곳을 패어 놓은 폭죽의 탄흔이 구멍을 만들었고, 그 곳에서는 불꽃보다 더 선연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폭죽 박스를 조심스레 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답답했던 지 아르바이트 하던 분이 가위를 들고와 줄을 끊은 거예요. 근데 폭죽을 발사하는 뇌관을 건드려 오폭이 생긴거죠. 일순간에 저를 향해 폭죽이 발사됐습니다. 온몸은 피투성이가 됐고 화약 냄새가 진동했지만, 행사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올랐죠. 이후 4~5개월은 병원신세를 져야했어요.”

화약을 다루기에 언제 생길 줄 모를 불상사가 첫 출발선에서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 일은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제일주의의 중요성을 몸으로 배운 계기가 됐다. 한번은 폭죽을 담는 지통에 수녀 한 분이 눈을 맞아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당시 눈이 퉁퉁 부은 수녀님께 얼마나 미안하던 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그 일을 계기로 수녀님이 운영하는 보육원과 자매결연을 맺어 봉사에 눈을 뜨게 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 불꽃 같은 삶, 노벨에서 배운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지곤폭죽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 해 200여 건의 전국 출장 불꽃축제를 치러낸다. 큰 국가 행사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불꽃이 요즘에는 일반 기업이나 동문회에서도 쓰일 만큼 대중화됐다. 불꽃이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인식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개선된 것이다. 그만큼 미래도 밝다. 불꽃 연출 전문인력의 수요가 늘고 있지만 이 분야의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해 불꽃 연출가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무엇보다 전문기술을 가진 특수전문직으로서 철저히 자신의 연출 능력과 경험에 따라 많은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이 직업의 큰 이점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돈이 전부가 아니다. 하늘에 3D 입체영상을 수놓지만 종사자들은 3D 수준의 노동강도로 일을 해야 한다. 여러가지 산적한 문제가 있고 풀어야할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간 놓쳐버리던 꿈도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화약 관련 일을 하다보면 노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평화주의자인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만들었지만, 인류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전쟁으로 고통을 안기면서 그의 근심이 커지게 되죠. 노벨상이라는 세상 최고의 상을 만들면서 자신의 부를 스스로 사회에 환원한 것처럼, 불꽃과 화약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자 내년 초에는 법인화를 할 생각입니다.”

유씨의 머리 속에는 법인화된 유지곤폭죽연구소의 모토도 이미 정해놓았다. ‘인간생활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화약기술’이다.

“에어백의 가스발생기에도 화약이 들어갑니다. 화약 유통이 돈이 되지만, 중동지역에 최루탄을 파는 일 따위는 돌아보지도 않을 생각이고요. 볼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랑의 불꽃봉사대’를 꾸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봉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로 만나고 얘기하면서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마음도 추스르고 있고요.”

유씨의 불꽃 인생은 서서히 발화점을 향해 달아오르고 있다. 돈을 번 사업가가 아니라, 마음이 불꽃같은 착한 사업가의 모습이 그에게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