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박혜나(32)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단아하고 차분했다. ‘중력을 거부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초록분장을 지운 그는 여성스러움이 한껏 묻어나는 배우였다. 친구들을 배려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는 셜록 홈즈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챙기는 제인 왓슨을 닮았다.

10개월간 대장정을 이어온 뮤지컬 <위키드>를 마치고, 쉴 틈도 없이 창작 뮤지컬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에서 명탐정 셜록 홈즈의 조수인 왓슨 역을 맡은 박혜나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셜록홈즈: 앤더슨가의 비밀>의 대본이 정말 재미있었다”며 “사건이 진행되면서 배우들이 끌어가는 대사가 흥미로운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라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천재지만 괴팍한 성격의 셜록 홈즈를 돕는 왓슨은 범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는 역할이다. 이성적인 추리는 셜록 홈즈가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왓슨이 맡는다. 왓슨은 통상 남성이라는 통념을 깬 여성 왓슨은 섬세하다. 홈즈가 놓치는 부분을 왓슨은 여자로서 사건을 바라보며 홈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왓슨을 연기하면서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캐릭터가 흔들리기 쉽다. 일관성있는 연기를 하려고 연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사량이 굉장히 많다. 상대방 대사를 듣고 대사를 생각해 낼 수 없다”며 “대사를 통째로 다 외워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혜나는 2006년 소극장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에서 앙상블로 데뷔했다. 그는 “당시 제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밟아야 하는 동선을 모두 미리 체크했다. 실제 양양이 의상을 입고, 엄마 구두를 신고 주인공처럼 혼자만의 리허설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의 은수 역이 첫 주인공이었다. 흥행은 실패했다. 그는 실패요인으로 “관객들이 원하는 것과 창작자들이 원하는 것의 차이가 실패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남한 산성>의 난생 역을, <모차르트>의 콘스탄체 역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8년간의 무명 아닌 무명 생활은 <위키드>의 엘파바를 차지하면서 단숨에 날려버렸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폭발적인 가창력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팬들은 여전히 그를 ‘엘파박’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어느새 왓슨으로 변해 있었다. “떠나 보내야 할 일은 빨리 잊는다”며 “지금은 왓슨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박혜나의 성격은 왓슨과 닮았다. “오지랖이 넓어서 그렇다”며 웃는 그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중심으로 돌아가는 무대보다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관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혜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대 위에 서 있을 때 좋은 기운을 주는 배우, 믿고 보는 배우,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동료에게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