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현은 배우로서는 이례적으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졸업 후 배우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9살이던 2004년 아역배우로서 삶의 향방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남지현의 심리학과 선택 이유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연기를 하면서 사람에 대해 궁금해졌고, 전공공부로 그 갈증을 채웠다. 또 다른 유형의 사람을 공부하고 연기로 이해를 넓혔다. 그가 이번에 연구한 인물은 유플러스 모바일TV의 드라마 ‘하이쿠키’의 최수영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최수영은 ‘도너츠’처럼 안이 비어있는 사람이었다.

“최수영의 감정은 극단을 오가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핵심이 없는 사람이었죠. 마치 도너츠처럼 핵심은 없고 주변을 둘러싼 표면만 있는 친구였어요. 정서적인 불안정성과 감정의 변화가 있고, 인생관을 갖고 산다기보다는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데만 몰두하는 인물이었죠.”

그가 출연한 ‘하이쿠키’는 한 사학명문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입만 베어 물어도 소원을 이뤄주는 수제쿠키가 등장하면서 요동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 쿠키는 한 입을 먹으면 집중력이 올라가 공부의 능률이 오른다. 하나를 다 먹으면 꿈꿨던 판타지를 눈앞에 보여준다. 최수영은 공장을 전전하는 남루한 삶을 살다, 쿠키를 파는 동생 최민영(정다빈)의 사건 때문에 학교에 잠입하며 소동의 중심에 선다.

“마약을 소재로 하고 있고, 최근 비슷한 일들이 실제 일어나기도 했지만 저는 이 이야기가 마약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라고 봤죠. 욕망을 다루는 작품은 과거부터 많이 있었어요. 이 중 학교에서 쿠키가 매개가 되는 이야기는 없었죠. 욕망을 이뤄주는 수단이 눈앞에 있으면 어떻게 행동할지, 그 궁금증을 갖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학교를 떠도는 마약, 그 옆에 유령처럼 부유하는 등장인물들. 이 암울한 이야기 속에 남지현도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한 얼굴을 보여준다. 늘 해사하게 웃던 미소는 사라지고 탐욕과 안정에 대한 욕구가 눈에 이글거린다. 심지어 중간에는 큰 칼을 들고 상대를 위협하거나 실제 찌르기까지 한다. 낯선 남지현이다.

“바로 전 작품 ‘작은 아씨들’에서는 정의감이 넘치는 인물을 연기했어요. 최수영 같은 캐릭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동생을 구하기 위해 학교에 갔다가 오히려 쿠키를 학생들에게 팔아요. 동생에게도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고요. 다른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다짐보다는 ‘지극히 개인에만 충실한 사람을 연기하면 어떨까’는 궁금증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 외에도 작품에는 김무열, 장영남, 윤제문, 정희태 등의 배우들이 출연한다. 하지만 주역은 남지현을 비롯해 정다빈, 최현욱, 서범준, 채서은 등이 분하는 학생들이 중심이다. 이 중에서 남지현은 단연 긴 경력을 자랑한다. 나이로도 선배였다. 남지현은 촬영현장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였지만 동생들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분들과 늘 작품을 했는데, ‘하이쿠키’는 정말 다 처음 뵙는 분들이었어요. (정)다빈양은 작고 소중했고요.(웃음) 최현욱은 한 방이 있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열 선배는 맞서는 역할인데 촬영을 해보니 오히려 ‘마음 놓고 지는 싸움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이미 밝혔던 것처럼 남지현의 경력은 올해로 20년 차에 이른다. 내년이면 만 20년이 된다. ‘사랑한다 말해줘’ 윤소이 아역에 이어 장신영, 장진영, 한지혜, 이요원, 한예슬, 박진희, 신현빈, 구혜선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아역을 연기했다. 2016년 ‘쇼핑왕 루이’부터 성인 배역으로 발돋움해 ‘수상한 파트너’ ‘백일의 낭군님’ ‘365:운명을 거스르는 1년’ ‘작은 아씨들’까지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벌써 그렇게 됐더라고요. 생각을 안 했어요. 숫자에 둔감하기도 한 것 같고요. 이 드라마를 하면서 ‘네 앞에 쿠키가 있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거든요. 저는 결국 안 먹을 것 같아요. 개인적인 욕망이 없는 것 같거든요.(웃음) 배우로서도 천천히 느리게 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먼 미래나 큰 미래를 그리는 것보다는 당장의 작고 소소한 한 발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남지현의 20대도 끝자락에 이른다. 익숙하면서도 다양한 많은 것들을 해보자는 시기를 지나 인간관계도 연기도 더 많고 풍부해지는 30대를 생각하고 있다. 당장 다음 작품은 ‘하이쿠키’와 다르게 좀 더 사람냄새 나는 편한 캐릭터를 꿈꾼다.

“제게 쿠키 같은 존재라면 제 가족과 지인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또렷해져요. 제가 그들로 인해 삶이 행복하고 편한 만큼, 그 사람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거죠. 제 안정된 마음이 가족과 지인, 팬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연기의 동기부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