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관(西關) 영변 땅에 한 정숙한 여자가 있으되 성은 길(吉)씨니, 그 아비는 본부(本府) 향관(鄕官)이요, 吉女(길녀)는 서녀(庶女)라. 부모가 다 돌아가시니 그 친척에게 의지하여, 나이 이십이 되었으나 시집가지 못하고, 베짜기와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이보다 앞서 경기 인천에 신명희(申命熙)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 젊었을 때, 꿈을 꾸었는데, 한 늙은이가 계집아이를 하나 데리고 나타났는데, 나이는 5~6세 정도 되었으나, 흉측하게도 얼굴에 입이 열 하나가 있는 기이하고 괴상한 생김이었다. 늙은이가 일러 가로되, “이 아이는 훗날 그대 배필이 될 것이니, 마땅히 그대와 더불어 백년해로 하게 될 것이도다”라고 하거늘 놀라 깨달으니 꿈이었다.

그후 혼인을 하게 되었으나, 나이 사십에 아내를 잃고 살림을 맡을 사람이 없게 되어, 처량한 마음에 별실이나 얻고 싶었으나 매양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 이때 친구가 영변원(寧邊員)을 하고 있었기에 찾아가 일을 도와주며 지내게 되었다.

하루는 또 꿈을 얻으니, 오래 전에 꿈속에 나타났던 늙은이가 ‘입이 열 하나 달린 계집’을 데리고 또 나타났는데 나이가 이미 장성한지라. 늙은이가 말하기를 “이 아이가 이제 장성하였으니, 이제 그대에게 가리라”고 하니, 깨어나 더욱 괴이히 여기었다. 마침 내아(지방 관아의 안채)에서 아전에게 명하여 “곱게 짠 삼베를 무역하여 들이라”고 하니, 이방이 말하기를 “여기 향인의 처녀가 세포를 잘 짜니 가장 상품이라. 경내에 유명합니다” 하고 이윽고 그 베를 들이거늘, 과연 정밀하고 가늘어 세상에 드물었다.

선생이 그 짠 것을 보니, 그 여인의 사람됨을 가히 알 것 같았다. 문득 이러한 여자와 속현(아내를 여읜 뒤 새 아내를 얻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고, 처녀의 집과 절친한 자를 후히 사귀어 중매하게 하니, 처녀의 종부(백부, 숙부)가 기꺼이 듣거늘, 즉시 폐백을 보냈다.

여자가 한갓 재질만 정묘할 뿐이 아니라, 안색이 심히 아름답고 행동거지가 조용하고 품위가 있었다. 꿈속에 나타났던 여자가 흉측하게 ‘입이 열 한 개’였던 바, 여자의 성씨가 길(吉)씨인 것을 알게 되자, 파자해몽으로 吉(길할 길: 十 + 一 + 口)자는 ‘열 한 개의 입’의 성씨로 풀이되는 것을 알고, 하늘이 맺어준 인연임을 알고 감동하여 애정의 두터움이 더욱 친밀하였다.

머무른 지 두어 달에 본관에게 하직하고 고향에 돌아갈 때, 길씨녀의 집에 가서 오래지 않아 데려감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오니 일이 번잡하여 어느 사이에 삼 년이 되도록 그 약속을 시행치 못하니, 서울과 영변읍이 멀고 또한 편지 또한 끊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길씨녀의 친척들이 이르되, “신명희(申命熙)를 가히 믿지 못하리라” 하여, 몰래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려 하였으나, 길씨녀가 짐작하고 절개와 지조를 더욱 독실하게 하고, 비록 집안에 있는 뜰의 출입이라도 반드시 조심하였다. 이에 꾀를 내어 길씨녀로 하여금 강제로 고을 원에게 바치게 하였으나, 길씨녀는 온갖 회유와 위협에도 끝까지 정절을 지켜, 신명희를 다시 만나 행복한 생을 마치었다.-청구야담

‘청구야담’에 실려 있는 내용을 간추려 살펴보았다. 꿈의 내용은 계시적 미래예지 꿈으로, ‘입이 열한 개 달린 여아가 배필이 될 것’이라는 꿈의 계시가, 파자해몽(破字解夢)으로 길(吉= ‘十’+‘一’+‘口’)씨 성을 지닌 처녀를 맞이하는 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렇게 노인이 꿈에 다시 나타난 것처럼, 꿈이 반복적으로 또는 진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례가 있다. 이는 그만큼 꿈으로 예지된 장차 일어날 일이 절대적으로 중대한 일이며, 점차 그 실현 날짜가 다가오고 있음을 뜻하고 있다.

파자해몽(破字解夢)은 꿈을 해몽하는 데 있어, 한자를 깨뜨리거나 합쳐서 살펴보는 문자유희인 파자(破字)의 원리를 활용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이 경우 한자를 분합(分合)하거나 한자음의 유사성을 이용하여 풀이하는 등 다양하다. 파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파자이야기(학민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러한 파자해몽은 한자의 파자(破字) 풀이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꿈이야기지만, 파자해몽의 꿈이야기 속에는 지적인 희열감을 맛볼 수 있는 재미있는 꿈이야기가 상당수 보이고 있다.

유사한 파자해몽의 사례를 살펴본다. 선조 임금의 어느날 밤 꿈이야기로 각색되어 구전되어 전하고 있는 바, 어떤 계집이 볏단을 머리에 이고 그대로 들어와 내려놓는 꿈을 꾸었다.

이에 해몽을 하게 하니, 계집[女]이 볏단[禾]을 이고 보면 ‘委(위)’자가 되며, 여기에 ‘사람 인’ 변을 하면 ‘倭(왜)’가 되어 이는 왜적들이 쳐들어 올 조짐인가 하옵니다”로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중국의 명태조(明太祖)가 꾼 꿈으로 언급하고 있다.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의하면, “명 태조(明太祖)가 꿈에 볏단을 머리에 인[戴] 어떤 여인(女人)에게 떠밀려 자빠진 꿈을 꾸고 나서, 왜(倭)의 침략을 미리 대비하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일본을 정벌하는 설이 유행되었다”는 것이다. 이익(李瀷)‘성호사설’.

<홍순래|현재 고교 국어교사, 한라대 강사, 꿈해몽 전문가로 ‘꿈해몽백과(공저)’ ‘꿈해몽상당사례집’ 등의 저서가 있다. https://984.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