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방에서 장기를 두거나 구멍가게 앞 테이블에서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동네 아저씨가 연상됐다. 하드보일드 로맨틱 코미디 ‘싸움’(감독 한지승, 제작 시네마서비스)의 개봉(12월13일)을 앞둔 영화배우 설경구는 예전보다 헤어스타일과 패션이 깔끔해졌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인터뷰 내내 감정을 숨기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다른 배우들과는 달랐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얼굴색이 금세 변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신나서 말이 많아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정겨웠다.

Action(액션)=제가 ‘싸움’에서 맡은 상민은 헤어진 아내 진아(김태희)와 정말 갈 때까지 갈 정도로 치열하게 싸워요. 기존의 밀고 당기기를 넘어서 몸으로 부닥치는 거죠. 김태희한테 맞은 소감요? 맞긴 정말 많이 맞았죠. 그러나 걔가 때려봤자 얼마 세겠어요. 그냥 참을 만했어요. 폭력보다 더 무서운 장면은 카체이스신이에요. 제가 소형차를 모는데 김태희가 카니발로 논두렁으로 밀어버려요. 논두렁이어서 다행이죠. 시커먼 바다에 밀어 쳐 넣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하하하

Cowardly(소심하다)=상민은 제가 이제까지 맡아온 본 역할 중 가장 소심한 남자예요. 연필을 꼭 2㎜로 잘라놓고 꼭 각을 잡아두죠. 늘 툴툴대고 속이 좁아 여자를 열받게 하는 인물이에요.

Diet(다이어트)=이제는 ‘고무줄 몸무게’란 칭호는 사양할래요. ‘공공의 적’ ‘역도산’ 때처럼 20~30㎏ 뺐다 찌우는 짓은 다시 못하겠어요. 곧 ‘강철중’ 촬영을 시작하는데 ‘공공의 적’ 때처럼은 살을 못 찌우겠더라고요. ‘싸움’ 촬영을 마친 후 현재 한 8㎏만 찌웠어요. 저도 마흔을 넘겼는데 몸 관리해야죠. 건강 검진요? 받아야 하는데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봐 무서워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어요.

Fashion(패션)=예전보다는 좀 신경을 쓰는 편이죠. 정말 예전에는 인터뷰나 행사가 있어도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미용실에 들르지 않고 그냥 머리만 감고 아무렇게나 입고 나갔어요. 그러나 ‘그놈 목소리’ 홍보 활동 때 제작사 대표와 박진표 감독이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당부해 변화를 주게 됐어요. 이제 나이도 있으니 예의 좀 지키라는 거죠. 오늘 아침도 일찍 미용실에 다녀왔어요.

Ground(이유)=이 부부가 격하게 맞붙는 이유는 큰 게 아니에요. 여자가 남자에게 “미안하다”는 단 한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남자가 안 해줘서 이렇게 된 거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그동안 쌓인 감정이 눈 녹듯 녹을 수 있었을 텐데…. 저는 제가 잘못했을 때는 ‘미안하다’는 말을 잘해요. 그러나 여자들이 ‘뭘’ ‘어떤 부분’ 하고 따져 물으면 좀 골치가 아파지죠. 하하하.

Love(사랑)=(상당히 쑥스러운 표정) 아직 다시 누구를 만나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침묵)

Old maid(노처녀)=김태희와 세대차요? 전혀 못 느껴봤어요. 걔도 나이가 28살이에요. 요즘 결혼을 늦게 해서 그렇지 예전 같으면 노처녀예요. 처음에 난 한 22~23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더군요. 태희가 처음에는 나를 무서워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당장 호칭을 ‘선배님’에서 ‘오빠’로 바꾸라고 명령했죠. 그러고 나서 편하게 지내게 됐어요. 생각과 달리 무척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어요. 나중에 많이 친해지니까 장난으로 ‘여보, 여보’라고 문자를 보내더군요.

Wed(결혼)=(약간 황당한 표정)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글쎄요. 그걸 내가 정의 내릴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남녀 관계를 통제하려면 필요하긴 하죠. 결혼하면 모두가 행복하면 좋긴 한데 그게 안 되니까 문제죠. 남녀의 차이점 때문이죠. 인류가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라고 생각해요. 하하하.

〈글 최재욱·사진 김기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