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강우(37)는 늘 작품 안에서 고생한다. 날이 바짝 선 인물을 연기하거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모두 뽑아내는 인물을 주로 연기했다. 작품을 끝낼 때마다 ‘이것보다 더한 고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그를 항상 더욱 지독한 인물 안으로 갖다놓았다. 민규동 감독의 영화 <간신>에 출연한 김강우는 더 이상 간데없을듯한 광기의 끝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최고의 폭군으로 불리는 연산군이 그의 몫이었다. 극중 탐미적인 예술가이자 잔학한 왕이었던 연산은 영화 속 관객이 눈살을 찌푸리는 대부분의 상황을 만든다. 스스로도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고 그 스스로도 피 칠갑을 하고 돼지우리에 떨어지는 등 극단적인 연기를 했다. 너무나 기이한 인물이었기에 김강우는 사랑하는 가족과도 거리를 뒀다. 강한 정신력을 소유했다고 혼자 생각했지만 연산군을 담는 일은 역시 힘들었다.

“촬영 때 양수리 세트장에서 주로 있었는데 숙소에서 집엘 잘 안 갔어요. 쉬는 날에도 사람을 잘 안 만났고요. 누굴 만나거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어서 가정의 일원인 개인감정으로 돌아오면 다시 연산으로 돌아오기 힘들잖아요. 아이도 너무 보고 싶었지만 일부러 만나지 않았어요. 외로운 상황이었지만 그걸 즐겨야 했죠. 연산군도 외로운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극중 연산은 어머니인 윤씨가 폐비가 돼 사약을 받은 일을 알고는 조정 대신들이 죽거나 축출되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킨다. 김강우는 지금까지 연산군을 연기한 많은 배우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훨씬 많은 사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영화에서는 그나마 완곡하게 표현됐지만 연산군의 기이한 행동들은 역사에 좀 더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다고 했다.

“여인의 나체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죠. 말을 교미시켜놓고 그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있고 직접 사료로 보는 행동들이 더 적나라했어요. 사람을 주기고 그 집터를 없애고 거기에다 연못을 만들어 노는 일 등은 보통의 생각으로는 따라가기 힘들죠.”

사료를 살펴본 김강우는 폐비 윤씨 사후 10년 동안 정치를 하고 왕권이 굳어질 무렵 광기를 드러낸 연산에 대해 “어머니에 대한 결핍이 그를 미치게 한 것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 또는 그 시대, 그 분위기에서는 살아선 안 될 사람이 연산이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초상화 하나 없는 연산의 느낌을 만들기 위해 동물을 생각했다. 아니면 백남준이나 앤디 워홀 같이 동시대를 초월한 감성을 가진 아티스트를 참고 하기도 했다.

“왕이고 조선이니까 표현의 한계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히틀러 동영상도 보면서 그가 대중을 선동하는 모습을 봤죠. 또 미국의 연쇄살인마들을 FBI에서 심문하는 영상도 챙겨봤는데 결국 또 연산의 모습과는 이질감이 있더라고요. 결국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사람도 동물이니까요. 사나은 늑대나 사슴의 목을 무는 사자 또는 독사 그런 이미지들을 들여왔어요.”

그는 촬영이 없을 때는 우울한 음악들로 정신을 흐트러뜨려 놓고는 촬영을 앞두고는 강한 비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스스로 영혼의 나사를 뺐다고 말했다. 민규동 감독과는 촬영 전 치열한 의견 교환을 통해 설정을 다 잡아놓고 정작 촬영장에서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뭔가에 홀린 듯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나면 하루가 지났다. 이러한 과정이 모여 김강우 만의 연산이 완성됐다.

“특히 여배우들을 많이 고생시켰어요. 단희 역 임지연씨나 설중매 역 이유영씨 뿐 아니라 조단역으로 나오는 운평 역 여배우들도 고생이 많았죠. 촬영 당시도 추웠어요. 그렇다면 ‘내가 여배우들을 위해, 현장 스태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뭘까’하고 생각했어요. 차 한 잔 타주고, 이불 덮어주는 게 아닌 최대한 집중해 촬영을 빨리 끝내는 게 좋은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제가 현장에서 집중력을 잃거나 인간 김강우의 모습을 보이거나 이런 일은 안 되죠.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배려는 없었어요.”

그가 영화를 마치고 느와르 장르의 드라마 <실종느와르 M>에 출연한 것은 온전히 치유를 위해서였다. 쉽지 않은 드라마도 연산을 겪은 그에겐 치유였다. 드라마와 영화 일정을 모두 마친 그는 온전히 가족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보통 인터뷰를 하면 ‘왜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요. 사실 이야기할 게 없어요. 제가 봐도 제 삶은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또래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아요.”

가십을 위한 인터뷰를 한다면 정말 김강우는 건질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인터뷰에서 느낄 수 없는 단단함과 신선함을 마주한다. 그것이 바로 김강우라는 배우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고, 그가 좀 더 많은 연기를 해야 할 이유다.

“원래 다혈질이고, 고집도 세고 못 된 성격이었어요. 크면서 집에서 교육을 받은 것도 있지만 연기를 하면서 부드러워졌어요. 아직 제가 아는 저와 대중이 아는 제 모습에 간극이 있는 듯해요. 그래서 아직 저는 더 연출자로 하여금 다듬어져야 하죠요. 가끔 이렇게 연산 같은 역할을 하면 괴롭기도 하지만 쾌감이 있어요. 누가 그렇게 현대물에서 극도의 화를 내고 수십명을 죽이는 광기를 발휘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