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소감을 했을뿐인데 친일파로 매도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장학구 관장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월전 장우성 선생의 얼굴을 쏙 빼닮은 장 관장은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얼굴의 주름은 깊어갔다.

“아버님이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1년 만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했다. 이후 대상도 받았다. 대상을 받았으니 수상소감을 해야 했다. 원래 아버님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시는 분이다. 대중 앞에서 수상소감을 말하자니 당연히 음성이 떨렸다. 조선일보 기자가 음성이 떨리며 감격했다고 써놓았다. 그 기사가 지금 이렇게 문제가 될 지 당시에는 몰랐다고 말씀하시더라.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일제에 고초를 겪은 유달영 박사가 아버님의 친일은 말도 안 된다고 인정했다. 만일 아버님이 친일파라면 유 박사께서 절대 가까이 하질 않았겠지.”

월전 장우성 선생의 셋째 아들인 장학구 관장은 월전의 임종을 지켰다. 월전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같이 했다. 월전 선생은 자신의 억울함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들에게만은 말했다. 2000년대 초 친일파 얘기가 나왔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장 관장은 월전 선생이 아무런 항변을 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심정을 다 말씀해주시더라. ‘난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친일을 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민족문제연구소에 항의도 많이 했지만, 들어주지 않더라. 편지를 보내 수상소감을 했을뿐인데 친일파가 됐다고 이의제기했는데,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

월전 장우성 화백의 집안은 독립운동 자금을 댄 가문이었다. 양이보국(讓夷保國)과 위정척사(衛正斥邪)사상에 기초해 의병 투쟁의 기초를 마련한 화서 이항로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여주군사(2005) 화서 이항로 선생 독립운동 인맥도에 따르면, 장학구 이사장의 조부인 일재 장수영 선생과 증조부인 만락헌 장석인 선생은 금계 이근원 선생, 실곡 이필희 의병장, 광암 이규현 의병장, 이병덕 의병장 등을 후원, 의병자금 지원 및 그들의 가족 생계 지원 등으로 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

장 씨가의 괴적은 각종 문헌과 자료가 전해지며, 대부분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 보존되어있는 실증적 자료이다. 그런 인연으로 이병덕 의병장의 장남은 현재 여주 장씨 가문 연고지에 정착·생존해 있는 이기철씨(84세)이다.

만락헌 장석인 선생은 경북 문경 출신으로 단양과 충주를 거쳐 1920년 경 여주군 홍천면으로 이주했다. 1000석 재력과 뛰어난 시문으로 주변의 여러 인사와 교유했다. 만년에 화서 이항로 선생을 거쳐 금계 이근원을 사사했다. 의암 문하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피신해온 사우들을 돌봤다.

“증조부와 조부께서 의병장들을 돕고, 독립운동에 자금을 댄 분들이다. 1000석에 달하는 재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을 후원했다. 조부께서는 이규현 선생과 동문수학한 사이다. 심지어 일본어는 한마디도 못쓰게 했다. 이런 가풍을 지닌 집안에서 자란 아버님이 친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월전 선생은 생전에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정원을 만들고 한벽원이라 이름 지었다. 혼탁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한벽원(寒碧園)에 들어서면 찬 기운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선비정신을 일깨우는 정원이라는 의미다. 월전 선생이 직접 지었다. 차디찬 푸른 물결 같은 올곧은 월전의 사상이 한벽원에 그대로 녹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