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중2병’이 걸린다는 청소년기에 한 소년은 인생을 바꿀 결심을 한다. 2003년 부산 양정동의 한 PC방에서 ‘오빠머찌나’라는 ID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결심을 적는다.

“친구들아, 내 인제 운동한다. 커서 성공해서 좋은 모습으로 보자. 아주 먼 훗날 나의 꿈과 미래를 위해.”

결심을 굳힌 소년은 프로야구 롯데의 주축 선수는 물론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롯데 외야수 손아섭(30)의 이야기다. 손아섭의 이 선언은 아직도 온라인상에서 화젯거리로 종종 떠오른다. 어릴적 당찬 선언이 문득 떠올라서일까. ‘추억의 장소’를 꼽아달라는 요청에 손아섭은 주저하지않고 양정동을 꼽았다.

손아섭은 “중학교 2학년 때 방황기가 왔다. 친구들과 뛰어노는게 너무 좋았던 반면, 야구가 하기 싫었다”고 했다. 집도 경제적으로 힘든데다 급격히 늘어난 훈련량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9월에는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무작정 놀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 열정이 다시 꿈틀거렸다. 손아섭은 “놀아보니 한계가 있더라. 방황하면서도 내가 결국 잘 할 수 있는게 야구라는 것을 느꼈다. 야구할 때가 행복했다는 것을 느낀 시점이었다”라고 했다. 그 때 써내린 글은 함께 놀던 친구들에게 “그만 연락하라”는 ‘선전포고’였다.

야구를 너무 좋아해서 시작했기에 할 수 있는 결심이었다. 손아섭은 어릴 적 동네에서 알아주는 ‘별난 아이’였다. 책상 앞에 앉아있기 보다는 뛰어노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워낙 에너지가 넘쳐서 태권도 학원 관장이 선수가 되기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기도 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야구를 정식으로 해보라”고 했다. 재학중이었던 양정초등학교에 마침 야구부가 있었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한 동네에 살았던 이상화(KT)는 단짝 친구였다. 집 창문에서 “상화야”라고 부르면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살았다. 동네 전봇대 아래에서 스윙 폼을 잡아보면서 프로 선수가 되는 꿈을 키웠다. 손아섭은 “학교를 마치고 나면 (이)상화와 함께 밤 늦게까지 운동을 하곤 했다. 그때는 정말 체력이 넘쳤다”고 했다. 소형차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의 주차장에서 손아섭은 ‘악바리’ 근성을 키워나갔다.

양정 사거리에 있는 야구 배팅 연습장도 종종 찾았던 곳이다. 500원을 넣으면 기계에서 20여 개의 공이 나왔다. 손아섭은 “어릴 때는 500원이 큰 돈이었기 때문에 20개에 모든 정성을 쏟아서 연습했다. 그래서 폼을 바꿀 때 여기를 찾아와 연습을 했다. 좋은 습관을 들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연습장이 사라졌지만 손아섭은 그 곳에서 스윙 폼을 다잡아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자란 손아섭은 개성중-부산고를 거쳐 2007년에는 롯데에 입단하는데 성공했다. 다시 떠올리면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손아섭은 “당시에 부산에서 야구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가 되는게 꿈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자신이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그는 “그렇게 보면 내가 어렸을 때 꿈꿨던 부분을 지금 어느 정도 이룬 상태”라고 했다.

손아섭은 아직도 자신의 휴대폰에 중학교 시절 자신이 했던 선언을 캡처해 보관하고 다닌다. 그는 “허세가 가득했던 시절이라 지금 봐도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결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손아섭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당시의 손광민(손아섭의 개명 전 이름)은 자신이 지금처럼 성장했을지 상상이나 했을까. 손아섭은 “아마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요놈 잘 컸네, 손아섭이 많이 컸네!’라고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머찐(멋진) 오빠’가 된 손아섭은 양정동에 살던 까까머리의 소년을 떠올리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