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지난해 11년만에 가을야구에 올랐다. 운이 상당했다. 득점과 실점으로 계산하는 피타고리안 승률은 0.479로 8위였는데 실제로는 0.535로 3위였다. 불펜이 강했고, 덕분에 적은 점수차 경기를 이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 ‘승운’은 중요했다.

올시즌, 그 운이 다했다. 1일 기준 피타고리안 승률은 0.446인데, 실제 승률이 0.400까지 떨어졌다. 지난해에도 팀 타율 0.275(8위)가 문제였는데 올해 0.252로 꼴찌로 떨어졌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하주석은 시즌 아웃, 정근우는 25경기밖에 못 뛰었고, 타율이 0.193이다. 믿었던 불펜도 흔들렸다. 불펜 불안은 투수들의 능력 저하라기 보다는 수비 불안의 부작용이다. 주전 유격수와 중견수가 빠진 시즌을 치르는 중이다. 센터라인이 흔들리면, 전체 수비력에 영향을 미친다. 리그 수비효율이 66.1%에서 67.7%로 늘었는데, 한화 수비효율은 66.0%에서 66.4%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한화 수비효율은 6위에서 8위로 떨어졌다.

여기에 더해, 2019시즌 한화는 얼핏 무모해보이는 특별한 도전을 하고 있다. 2019년 고졸 신인 3인방 변우혁(1차), 노시환(2차 1라운드), 유장혁(2차 2라운드)의 과감한 육성이 그 도전이다.

시즌 초반부터 1군 엔트리에 포함시켰고 꾸준한 기회를 줬다. 결과는 팬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1일 현재 변우혁의 OPS는 0.665, 유장혁은 0.553, 노시환은 0.527이다. 승리기여도 역시 떨어진다. 스포츠투아이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 기준 변우혁은 0.30으로 그나마 팀 내 7위지만, 유장혁은 0.03, 노시환은 -0.74를 기록 중이다. 노시환의 경우 팀 승리에 마이너스 효과를 안겼다.

3명 모두 지나치게 삼진율(삼진/타석)이 높다. 변우혁 29.3%, 유장혁 36.0%, 노시환 35.8%다. 주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규정타석 타자 중 최고 삼진율은 KT 박경수의 24.4%다. 한화의 ‘고졸 신인 우타 3인방’, 이른바 3H의 육성 프로젝트는 실패한 걸까.

안경현 SBS 해설위원은 “KBO리그에서 신인 타자의 경우 우타자가 좌타자에 비해 훨씬 불리하다”고 말했다. 리그 투수들이 좌우타자를 상대하는 기본 레퍼토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좌타자들은 변화구를 상대하더라도 몸쪽으로 휘어들어오는 계열의 공이 많다. SK 염경엽 감독은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은 어떻게든 대응이 가능하다.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타자들은 바깥쪽에서 멀어지고 떨어지는 공과 상대해야 한다. 힘을 모으지 못한채 공을 따라다니다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기 쉽다. 염 감독은 “우타자들이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 KBO리그 우타자들의 성장은 무척 더뎠다. 2001년 이후 22세 이하로 20홈런 이상을 때린 타자는 겨우 4명. 김태균, 이대호, 강정호, 김하성밖에 없다. 최정이 처음 20홈런을 때린 것은 23세 시즌이던 2010년이었다. 18세 데뷔한 최정으로서는 6년차에 만든 기록이다. 최정 역시 첫 두 시즌(2005~2006)의 삼진율은 29%였다.

KT 강백호 못지 않은 주목을 받은 롯데 한동희 역시 첫 시즌 어려움을 크게 겪었다. 삼진율 25.7%에 삼진/볼넷 비율은 0.21밖에 되지 않았다. 신인 우타자에게 좌우투수가 고루 던지는 바깥쪽 변화구는 ‘악몽’이다.

악몽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길은 그 악몽과 마주하는 길이다. ‘이것은 꿈이다’ 라고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악몽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악몽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악몽을 겪어봐야 한다. 한화 석장현 운영팀장은 “구단 내부적으로는 1·2군 합해 1년에 300타석 정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은 첫 해 93타석, 두번째 해 204타석을 겪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3번째 시즌 삼진율은 18.2%로 떨어졌고 홈런 16개를 때렸다. 박병호는 첫 해 185타석, 이듬해 142타석에 들어섰다. 상무에 다녀온 뒤에야 213타석에 나설 수 있었다. 타석 당 볼넷 비율이 두자릿수로 높아진 것은 그 이후였다. 메이저리그 통계전문가 톰 탱고는 책 <더 북>에서 타자의 성장과 가장 큰 상관관계를 갖는 기록은 타석이라고 분석했다. KBO리그 우타자들에게 타석은 더욱 중요하다. 1군과 2군 투수 차이가 큰 리그에서 ‘1군 타석’은 더 귀한 가치를 갖는다.

한화의 도전이 ‘무모한 도전’으로 비춰지는 것은 우타 신인을 같은 해에 3명이나 성장시키려하기 때문이다. 1군 경기에서 아웃카운트 1개의 가치는 무척 중요하다. 그 아웃카운트를 동시에 3명에게 낭비할 수는 없다. 지난해 거둔 3위 성적은 팬들의 기대치를 더욱 높였다. 시즌 반환점을 돌면서 순위가 떨어지자 팬들의 불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구단으로서는 안팎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개막전부터 1군에 계속 머물렀던 내야수 노시환은 일단 2군에 내려갔다.

하지만 ‘어렵다’는 점에서 도전의 가치는 더욱 크다. KBO리그는 20년 가까이 새로운 우타 거포 발굴에 실패했다. 유망주들은 줄줄이 우투 좌타를 택했다. 우타 거포 성장을 ‘우연’에 기댈 수는 없다. 한화는 무리해보이는 계획을 세웠고, 어떻게든 실천을 하려고 한다.

한화 박종훈 단장은 “지난시즌 초부터 세운 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팀의 변화를 위한 큰 그림이다. 연고지에 1루수 유망주 변우혁이 있었다. 내야수 노시환, 유장혁을 과감하게 2차 1·2라운드에 지명했다. 타선의 파워를 위해서는 우투좌타 내야수보다는 우투우타 내야수가 필요하다는 계산이었다. 우투좌타 내야수는 거포로의 성장이 어렵다. 테니스로 치자면 ‘백핸드 플레이어’다.

무엇보다 3명 모두 스카우트들로부터 수비 재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비를 갖춘 상태라면 실전을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고교시절 내야수였던 유장혁은 드래프트 때 빠른 발을 바탕으로 외야 전향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한화가 그린 꿈은 가까운 미래 유격수 하주석, 2루수 정은원 등 센터 내야수를 중심으로 1루수 변우혁, 3루수 노시환, 중견수 유장혁으로 구성된 주전 라인업이다. 제대로 갖춰지면, 두산이 그랬고, 지금 히어로즈가 그런 것처럼 10년 넘게 단단한 팀이 될 수 있다.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당장의 1패를 두고 주변 여론이 부글부글 하는 가운데 경험을 위한 타석을 소비하기란 쉽지 않다. 신인이 자신의 타석에 재능을 증명하지 못하면 베테랑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난의 길이다.

그래서 베테랑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한화 김태균은 KBO리그 최근 20년간 데뷔 첫해부터 성공한 유일한 우타자다. 2001년 김태균 이후 학교 졸업 첫 해 신인왕을 따낸 우타자는 아무도 없다. 김태균이 같은 팀에 있다는 것은 행운에 가깝다. 김태균은 “1군은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곳이다. 당연히 조급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래도 잘하면 좋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시환은 그 조급증 때문에 스윙이 변했고, 2군에 내려갔다는게 김태균의 분석이다. 김태균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공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매 타석의 실패와 성공이 모두 공부다. 일단 거기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노시환은 6월24일 말소된 뒤 퓨처스에서 매일매일 경기에 나서고 있다. 변우혁과 유장혁은 1군에서 타석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1·2군을 합해도 목표였던 300타석을 모두 채우기는 만만치 않다. 김태균의 조언대로 매 타석이 공부라면, 공부의 결과는 언젠가 나온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실패한 전 타석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남은 타석을 준비하는 일이다.

21세기, 지구의 미래는 석유와 원자력에 기대지 않는다. 지구의 미래를 만드는 에너지는 1g에 수천만원이 넘는, ‘삼중수소’다. 위험한 쓰레기에서 지금은 미래 에너지의 대안으로 취급받는다. 삼중수소는 태양이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 핵융합의 원료다. 삼중수소가 핵융합을 통해 헬륨과 중성자를 만들어내면서 쏟아내는 에너지가 무한하다.

삼중수소의 표기는 3H. 한화의 ‘무모한 도전’이 결과를 내고, 3H가 핵융합에 성공한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 한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선수 육성 방식의 성공을 통해 KBO리그의 미래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유명한 예능프로그램의 제목도 ‘무모한 도전’에서 ‘무한 도전’으로 바뀌었다. 무모함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변화는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