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privacy)’라는 말은 16세기부터 사용돼 왔다. 일반적으로 ‘국가와 사회로부터 간섭 없이 개인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독립적인 상태’를 뜻하는 말로 통용됐다. 그러나 실제 프라이버시의 범주는 포괄적이어서 사생활의 권리는 피임을 포함한 낙태·자살·동성결혼 등의 사회·윤리적 문제와도 관련된다.

‘피임할 권리’는 ‘사생활 보호권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임신중절이 합법화로 가는 길이 열렸다. 자신의 임신 상태를 끝낼지 여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된 것이다. 과거에는 피임이 불법인 시절도 있었다. 사생활보호권이 헌법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때였다. 미국에서는 피임할 권리에 관한 연방대법원의 두 판례를 사생활보호권이 확립된 역사로 본다.

세 번 연속으로 출산과 영아 사망을 경험한 폴린 포 부부가 1961년 의사를 찾아가 피임 방법을 상의하면서 ‘포 대 울먼 사건’은 시작됐다. 당시 코네티컷에는 피임금지법이 있었다. 1879년부터 피임약 복용과 피임기구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피임에 관한 정보를 알고자 하는 것이나 알려주는 것도 불법이었다. 임신으로 인해 더는 신체와 정신 건강을 위협받고 싶지 않던 포 부부는 코네티컷주에 소송을 제기했다.

포 부부의 변호인은 “코네티컷의 피임금지법은 국가가 가정과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고, 정부 권력의 범위를 넘어서 모든 기혼자들의 사적인 성생활을 통제하려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성관계와 출산 행위야말로 가장 보호받아야 할 프라이버시 권리임에도 기혼 부부가 피임도구 없이 성관계를 가지도록 하는 것은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나아가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포 부부 변호인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대법관은 이 사건을 기각했다. 부부간의 관계를 프라이버시 권리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을 제시한 더글러스 대법관은 해당 법이 사생활보호권을 침해한다며 “이는 분명 부부관계와 관련된 사생활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다. 이 법(콤스톡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려면 경찰은 수색영장을 가지고 부부가 침실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조사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옹호한 권리는 피임을 할 권리가 아니라 법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인 ‘전통적 의미에서의 사생활 보호권’이었다. 부부간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서는 헌법에 프라이버시 권리로 명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1965년 산아제한운동가인 에스텔 그리스월드와 포 부부의 의사였던 벅스턴은 바로 소송사건을 기획해 피임 클리닉을 공개적으로 열고 피임 상담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체포돼 벌금이 부과됐고 주법원을 거쳐 연방대법원에 항소했다. 그 결과 헌법에 부부간의 프라이버시 권리가 명시됐으며 코네티컷주의 피임금지법을 위헌 판결로 이끌어 냈다. 이것이 ‘그리스월드 대 코네티컷 사건’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헌법상 자기결정권으로서 프라이버시권을 인정한 판례로 유명하다.

■김선형은 누구?

한양대학교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임상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여성들, 특히 일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이 처한 현실과 다양한 삶의 고충을 마주하면서 여성을 병들게 하는 것, 여성의 건강이 그들의 삶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여성 건강과 인권에 관한 주제로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피임을 모른다’(도서출판 파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