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음날 아이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은근슬쩍 장난을 치기도 했고 먼저 인사를 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이 아이는 학교에서도 혼나고 센터에서도 혼나는 아이였다. 자주 혼나던 아이는 가끔 “그냥 혼나면 되죠” “네, 차라리 혼내세요” 따위 말을 하곤 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보니 아이의 과격한 행동을 보아도 큰 소리로 화를 내기보다는 아이에게 다가가 ‘네가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는 식의 말들로 꾸지람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날은 아이의 말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날 이후로 ‘선생님도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좋은 어른이 되려면 아이들에게 ‘사과할 수 있는 어른’이 돼야겠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아동들의 마음을 읽고, 더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야 함도 아는 시간이었다.

오후시간에 센터에서는 아이들의 기초 학습을 돕는 공부를 진행한다. 초등학생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아이들의 학습지도를 하는 일은 간단하지 았않다. 아이들의 환경·상황·수준 등 개별적인 맞춤이 필요했다. 고학년은 저학년을 보며 “너무 쉬운 거 아니야? 나는 1학년 때 항상 100점이었는데”라며 서로를 비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해댔다. 학교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서로를 소중하게 대하는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특히 새로 들어온 단발머리 아이는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 아이를 데리고 센터의 다른 선생님께 아이의 독서와 받아쓰기 지도를 부탁했더니 선생님은 ‘화내지 말고 예쁘게 말해요’라는 책을 골라 주셨다. 센터에서는 받아쓰기 시험문제를 동화책에서 냈기 때문에 동화책을 꼭 읽어야만 했다. 그 책의 내용은 주인공이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투를 사용하면서 친구들과 지내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이 책의 내용을 매일 상기시켜 주고 2주 동안 매일 한글 공부를 함께해 주셨다. 친구의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하던 아이가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릴 때도, 연필을 빌릴 때도 “나 지우개 좀 빌려 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글 실력도 당연히 늘었다. 아이의 언어습관을 조금씩 고쳐 주려는 노력에 아이의 말투가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동안 내가 가장 노력한던 것은 어린이를 어린아이로만 보지 말고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린아이이기 이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 아이를 대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아이들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또 사회복지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환경 속의 인간’으로 보는 것인데, 이는 인간에게 보이는 모습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이 가진 환경, 즉 신체·심리·사회적 요인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의 인간’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 시간으로 기억된다. 나의 존재가 아이들에게 잠시 머물렀다 가는 사람으로 생각될지 몰라도, 나는 아이들의 환경 속에 함께 머무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