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한숨만 내쉬던 한국 축구는 오랜만에 웃을 일이 생겼다.

축구 선수들에 꿈의 기록이라는 ‘센추리클럽’(축구국가대항전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 그룹) 가입자가 한꺼번에 셋이나 탄생했다.

김호곤 수원FC 단장(69·117경기)과 조영증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66·102경기), 박성화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65·101경기)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인을 받으면서 한국의 센추리클럽 멤버는 13명으로 늘었다. 축구화를 벗은지 수십년이 흐른 노장들이 뒤늦게 영광을 되찾은 것은 한 축구 팬의 집요한 노력 덕분이었다.

‘기록 지킴이’로 불리는 윤형진씨(41)는 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기록에 손을 대기 전까지 세 분의 A매치 기록은 70경기 안팎이었다”면서 “2007년부터 찾아낸 기록들이 13년 만에 성과를 본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평범한 직장인인 윤씨는 축구 기록에선 둘째가라면 서럽다. 서강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그는 아시아를 호령한 한국이 유독 축구 기록이 부실한 것을 깨닫고 2000년부터 직접 기록을 정리했다. 5년에 걸친 조사 끝에 펴낸 <붉은 악마-그 60년의 역사>가 그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1948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이 치른 A매치 654경기의 날짜와 장소, 상대, 득점, 출전 명단 등을 한글과 영문으로 정리했다. 윤씨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기록물이라 출판비가 없어 고민했는데 당시 은퇴했던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이 도와주셨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윤씨의 저서는 기록 찾기에 불을 지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의 요청에 따라 2007년 8월 ‘민간조사요원’ 자격으로 동남아시아 6개국(홍콩·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순방을 떠났다. 윤씨는 각국 축구협회와 현지 도서관 등을 쉼없이 오가면서 1960~70년대 한국의 원정 A매치 기록을 찾았다. 현지에서 발굴한 A매치 기록만 80경기. 당시 아시아 최고의 축구대회 중 하나였던 메르데카컵 개최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성과를 냈다. 윤씨는 “현지 기자의 제보로 과거 기사에서 많은 기록을 찾아냈다”면서 “한국이 메르데카컵의 단골손님이었는데 이 기록을 찾아냈기에 센추리클럽 멤버들이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의 A매치 기록 윤곽을 잡아낸 시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자신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았다.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과 필리핀 등을 다시 방문해 빠진 기록들을 채웠다. 대한축구협회는 이 기록을 2018년 최종 정리해 FIFA에 공식 레터로 보냈고 인증을 받았다. 윤씨에게 조사를 의뢰했던 송기룡 대한축구협회 심판실장은 “FIFA가 이 자료를 인정하는데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과거 올림픽 아시아 예선 등 일부 기록을 인정받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윤씨는 만족하는 대신 한국이 잃어버린 22경기의 A매치를 찾고 있다. 해당 경기의 출전 선수가 11명이 넘어야 완전한 기록으로 인정하는 터. 1970년 킹스컵 홍콩전은 단 1명이 모자른다. 윤씨는 “홍콩전을 포함해 5경기가 이런 경우”라면서 “22경기를 채운다면 센추리클럽 멤버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광래 대구FC 사장과 최순호 포항 유스 총괄이사, 박경훈 전주대 교수 등이 후보군이다.

윤씨는 새로운 보물창고에서 22경기를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윤씨는 “미국 의회도서관에는 과거 대사관에서 수집한 현지 신문들이 보관되어 있다. 여기서 새 기록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유튜브에 옛 영상이 올라오는 것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 기록 찾기가 완벽해진다면 과거 자신이 펴냈던 책의 증보판도 꿈꾼다. 2023년이면 한국 축구가 첫 A매치를 치른지 75주년이 된다. 윤씨는 “앞으로 3년이 남았다. 이 때까지 빠진 기록을 채워가면서 출판에 필요한 돈도 모아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내 사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