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능의 역사 전체를 봐도 tvN ‘대탈출’ 이전의 사례도 이후의 사례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2018년 7월1일 첫 시즌의 첫 에피소드인 ‘사설 도박장’을 방송할 때까지만 해도 프로그램은 당시 젊은 세대에게 유행하던 ‘방탈출 게임’을 예능의 형식으로 확대한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3년여가 지난 현재 ‘대탈출’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지난 3일 ‘대탈출’의 네 번째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가 막을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스페셜 편으로 시즌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돌아보고 명장면을 찾아내고 탈출 당시 멤버들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정작 관심을 모은 것은 멤버들의 후일담보다는 ‘대탈출’의 세계관이 체계화되고 시각적으로 구체화되는 모습을 보여준 촬영 ‘비포 앤드 애프터(Before and After)’ 방송분이었다.

시즌 4는 모두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방송했다. ‘타임머신’을 중심으로 시간여행을 가는 ‘백 투 더 아한’, AI와 가상세계의 위험성을 경고한 ‘럭키랜드’ 그리고 ‘대탈출’ 고유의 소재 중 하나인 좀비물의 최신판 ‘적송교도소’. 그리고 무의식으로 떠나는 독특한 소재의 ‘크레이지 하우스’, 백사회를 비롯한 액션이 돋보인 ‘제3공업단지’, 마지막으로 감동코드를 혼합한 ‘하늘에 쉼터’였다. 시즌 1부터 발전시킨 각각의 설정을 구체화시켰으며 전혀 새로운 발상과 콘셉트로 접근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백 투 더 아한’에서는 기존 ‘백 투 더 경성’에서 보였던 스케일의 스펙터클을 계승한 모습이 돋보였다. ‘적송교도소’와 ‘하늘에 쉼터’ 등은 기존 소재인 교도소와 좀비, 사이비교단과 핍박받는 피해자 등의 코드가 혼합됐다. 스페셜편에 등장한 탈출의 설계과정은 세계관을 위해 미술팀 등 스태프들이 이른바 ‘뼈를 갈아넣는’ 창작의 고통을 눈치 채게 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럭키랜드’와 ‘크레이지 하우스’에서는 기존 예능이 작법을 뛰어넘는 진보도 이뤄냈다. ‘럭키랜드’는 멤버들의 얼굴을 따는 ‘딥페이크’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트로닉스’ 등 첨단기술이 등장했으며, ‘크레이지 하우스’는 아예 주어진 배경 없이 전체 세트를 제작진이 모두 제작하는 등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출연자 뿐 아니라 시청자들 역시 이들의 세계관에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러한 긴 사전 제작작업은 ‘대탈출’이 기껏 1년에 한 시즌 정도만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진통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이 공개되면 그동안 갖은 관성에 젖어 있는 많은 실내세트 예능들은 큰 자성의 시간을 갖곤 한다. 예능에도 작가주의가 필요하다. 끈질기게 설정을 이어가고 이를 세계관의 형태로 확장하는 ‘대탈출’은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유일무이하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대한민국 세트 기술의 발전도 해외로 많이 알려졌다. 예능에서도 이러한 발전은 엿보인다. ‘대탈출’의 도전은 대한민국 예능이 안주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