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명가 대한항공을 이끄는 살아있는 전설 강문수 감독(70)의 목소리에는 진한 감동이 묻어났다. 노감독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42년째. 그 세월 속에 유남규와 유승민 등 숱한 스타들이 탄생했지만 어딘가 아픈 손가락이었던 귀화 선수 이은혜(27·대한항공)의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 우승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듯 했다.

강 감독은 24일 기자와 통화에서 “(이)은혜가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선수인데, 정작 큰 무대에서 빛을 본 적은 없습니다”면서 “그 노력이 이제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아 지도자로 행복합니다”고 말했다.

이은혜는 전날인 23일 제천체육관에서 열린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양하은(포스코에너지)을 3-1로 눌렀다. 양하은 역시 이번 대회에서 패배를 몰랐던 선수지만 마지막 4게임에서 16-14로 승리하며 이 대회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이은혜가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것은 2016년 실업챔피언전 우승 이후 처음이다.

중국 내몽골 출신 이은혜는 2011년 귀화해 단원고를 거쳐 2014년 대한항공에 입단한 선수다. 그는 대한항공이 여자부 명문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힘을 보탰지만, 개인전에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11승4패, 전체 3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적을 냈으나 귀화 선수는 2명까지만 선발할 수 있다는 규정 아래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강 감독이 이은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것은 하필이면 한솥밥을 먹는 또 다른 귀화선수 김하영에게 양보해야 했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강 감독은 “이은혜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실력을 가진 선수”라면서 “코로나19로 취소된 부산세계선수권대회에선 태극마크를 달고도 대회가 사라지면서 기회를 놓쳤다. 2020 도쿄올림픽 세계예선에서도 한국의 쿼터를 안겼다. 올해 태극마크를 놓쳤지만 내년에는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은혜가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기량을 감안하면 국가대표 경쟁력은 인정해야 한다는 평가다. 그는 우승한 여자 단식 뿐만 아니라 아깝게 준우승에 그친 단체전에서도 한 경기도 패배하지 않는 저력을 발휘했다. 손목 부상으로 결장한 신유빈이 참가했다면 단체전까지 모두 우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결과였다.

이은혜는 “최고 대회인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해 기쁘다. 최근 팀 분위기가 여러 가지로 좋지 못한 데 주장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한 것 같아서 더 좋다”면서 “태극마크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다시 해야 한다. 이번 대회가 그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팀과 함께 다시 출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