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나라 선수와 지도자가 외국으로 진출하면 기뻐한다. 박찬호, 박지성, 류현진, 손흥민을 자랑스러워했고 박항서 등 축구, 양궁, 태권도 지도자가 외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뿌듯해했다.

한국 지도자가 외국에 진출하는 종목은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강세를 보인 종목이다. 그중 하나가 쇼트트랙이다. 한국은 역대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최다 메달을 따냈고 세계적인 선수들도 다수 배출했다. 그 중 한 명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게 안현수(빅토르 안)다.

안현수는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기 힘들다고 판단해 러시아로 귀화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안현수가 파벌 싸움에서 희생당한 선수라며 동정론이 크게 일었다. 안현수가 러시아대표로 소치에서 3관왕이 될 때도 우리 국민은 안현수를 지지했다. 안현수는 파벌 싸움 논란 속에 입을 다물다가 쇼트트랙 종목이 모두 끝난 뒤 말했다.

“나는 파벌 싸움에서 희생된 게 아니다. 나는 부상으로 한국 대표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을 뿐이다.”

현장에서 안현수 발언을 들은 기자는 안현수를 다시 봤다. 파벌 싸움의 희생자라고 말하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자신의 말에 더 큰 힘이 실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안현수는 솔직과 진실, 당당함을 택했다.

안현수는 은퇴해 지금은 중국대표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국적은 소치 때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다. 그리고 소치 때와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대표팀을 위해 뛰고 있다. 소속팀 선수들이 최대한으로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지도자 사명이다.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 함께 기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안현수가 지금 중국팀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모든 지도자가 똑같이 하는 일반적인 행위일 뿐이다.

안현수는 베이징올림픽 기간 중 함구하고 있다. 인터뷰 여부는 개인 또는 대표팀 결정에 따른 것이다.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고 누구나 함구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이 판정에서 이득을 보는 데 대한 한국측 불만과 분노가 안현수에게 과하게 쏠렸다. 그러자 안현수는 SNS에 글을 올렸다.

“지금 제가 처한 모든 상황들이 과거의 저의 선택이나 잘못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저는 그 어떠한 비난이나 질책도 겸허히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는 가족들이 상처받고 고통을 받는다는게 지금 저에게는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자신을 비난하지 말라는 말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향한 비난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대신 가족을 비난하지 말아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런 인간적 호소가 담긴 글에도 비난이 이어지자 안현수는,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글을 지웠고 그랬더니 이번에는 글을 지웠다고 난리다. 말을 안 해도 비난, 글을 적어도 비난, 지워도 비난…. 심지어 안현수가 한국 선수 한 명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까지 엉뚱한 방향으로 기사화하면서 또 다른 비난이 일었다. 안현수는 현재 한국대표 선수와 대표팀 및 대학 선후배 사이다. 선배가 후배 머리를 쓰다듬은 게 비난받을 일인가.

편파판정에 대한 비난이 국제빙상연맹(ISU) 또는 중국을 향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안현수에게 향할 이유는 없고 따라서 향해서도 안 된다. 안현수는 죄가 없다. 안현수는 선수일 때는 선수로서, 지도자일 때는 지도자로서 주어진 소임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고 지금 수행하고 있다. 그는 과거 한국에서 태어나 국가대표로 큰 성과를 낸 인물이며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 지도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