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이단아라고 할까.”

국내 e스포츠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최은경 한신대학교 e스포츠 융합전공 대학원·평화교양대학 조교수가 e스포츠에 대해 내린 정의다.

최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e스포츠는 다양한 영역들이 융복합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며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호기심이 끊이지 않는 분야”라고 정의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출신 최 교수는 영국 골드스미스 런던대학에서 TV 저널리즘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러프버러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정치경제학 박사가 됐다. 최 교수는 언론과 미디어 연구자 및 비평가로 활동하다가 2018년 전남과학대학교 e스포츠과 교육 과정 개발에 참여했고, 2019년 전남과학대에서 e스포츠 프로지망 학생들과 다양한 교육을 시도했다. 2021년 한신대로 옮겨 교양대에서 e스포츠 관련 융합 과목을 개설했고, e스포츠융합전공 일반 대학원 주임을 지내고 있다. 최 교수는 “‘한국이 게임은 잘하는데 연구가 빈약하다’는 외국 학계 비판을 듣고 e스포츠를 본격 연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교육청 인정 고등학교 첫 e스포츠 교과서 ‘e스포츠 실습’, ‘e스포츠 윤리’의 주집필이었고, 현재 ‘e스포츠 심리 훈련’도 준비 중이다.

e스포츠는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등 6개 게임이 시범종목으로 지정됐다. 2022년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8개 게임이 정식 종목이다. 올림픽에서는 시범 종목에도 선정된 적이 없다.

-우리나라 차기 정부 체육정책에 e스포츠를 미래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단 환영한다. 총론으로 보면 e스포츠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다. 미국, 유럽도 미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2030년까지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로 e스포츠를 꼽았다. 그런 추세를 우리 정부가 인지했다면 잘한 일이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 국내 여러 상황을 보면 선결과제가 너무 많다.”

-e스포츠는 어떤 산업이라고 보나.

“기술, 과학, 사람, 상상력, 철학, 인문학, 디자인, 메타버스, 디지털 미디어 등 정말 많은 산업이 융복합된, 살아있는 유기체다. 계속 변하고 있고 그런 변화도 공급자가 아니라 사용자, 즉 유저 중심으로 이뤄진다. 스포츠를 잘 안다고 e스포츠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지혜를 모아야 올바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e스포츠과 관련해 스포츠계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e스포츠계도 기존 스포츠 산업 구조와 거의 똑같다. 선수, 지도자, 트레이너, 프런트, 심판, 대회 개최, 분석, 미디어 등이 존재한다. 이런 데 대한 노하우는 스포츠계가 시행착오를 거쳐 체득한 장점이다.”

-e스포츠가 과거 온라인게임과 뭐가 다른가.

“기성세대가 해온 한판 깨기식 게임, 레벨 업 게임 등 목적성 게임과 완전히 다르다. e스포츠에서는 유저들이 서로 연합해 작전을 수립·시행하며 상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전략을 뽐낸다. 그 안에 게임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스토리와 세계관도 담겼다. e스포츠가 스포츠냐, 아니냐는 구분은 의미가 없다. e스포츠는 그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확실하게 모르는 외계인, 이단아로 보고 알아 가는 게 바람직한 접근법이다.”

-한국 e스포츠를 시기로 구분한다면.

“1990년대 중반 시작돼 10여전 이어진 스타크래프트 시대, 10년 전에 출시돼 지금까지 인기를 끄는 리그오브레전드 시대로 구분된다. 전엔 케이블 방송, 게임 채널, 스포츠방송사도 e스포츠에서 적잖은 매출을 냈다. 그런데 리그오브레전드가 나오면서 게임 개발사가 게임 업그레이드, 대회 진행, 중계 등 모든 걸 도맡고 있다.”

-현재는 리그오브레전드가 절대 강자다.

“리그오브레전드와 그외 많은 게임들 간 대결이라고 볼 정도로 리그오브레전드가 막강하다.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다. 리그오브레전드는 미국 기업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했고 라이엇게임즈 최대주주는 중국 기업이다.”

-e스포츠 중 어떤 걸 스포츠 영역에서 다루는 게 맞을까.

“e스포츠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게임과 실제 스포츠 종목과 연관된 게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를 스포츠게임이라고 한다. 축구 FIFA 온라인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다양한 스포츠게임에 미국은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다.”

-스포츠 게임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래픽이 너무 정교하고 뛰어나 실제보다 더 생동감이 넘친다. 실제 스포츠 스타들은 언젠가 은퇴하고 죽겠지만 e스포츠에서는 영원할 수 있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그를 만나보고 그의 스타일로 게임도 할 수 있다.”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정식종목이 됐다.

“리그오브레전드 등 8개다. 한국은 5개 종목에만 출전한다. 한국이 출전하지 않는 3종목(도타2, 몽삼국, 왕자영요 아시안 게임 버전)은 중국과 미국이 개발 및 투자한 것으로 중국은 8개 종목에 다 나선다. ”

-배틀 그라운드 방식이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

“국내에서 개발한 배틀 그라운드는 처음 PC버전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과 공동개발한 모바일로 한다. 게다가 중국이 ‘사람을 쏘는 것 안된다’고 규정하면서 새로운 버전을 개발해야 하는 게 논란이다. 배틀그라운드는 원래 사람을 쏘는 게임인데 그게 안 된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최국이 규정을 만들면 참가국은 따를 수밖에 없다.”

-e스포츠에서는 게임 개발사 권력이 막강하다.

“기존 스포츠와 가장 큰 차이다. 축구 대회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e스포츠는 게임 개발사가 지적재산(IP) 권리를 가지고 있어, 대회 개최 할 때 원칙적으로 개발사로부터 사용 허락을 받아야 한다. 개발사가 수락하지 않으면 대회를 열 수 없다. 대회 개최국, 게임 개발사가 판을 지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스포츠를 스포츠로 다루려면 이 문제가 결정적이겠다.

“게임사는 게임 업그레이드, 해킹 방지 등을 하고 있다. 회사 명운을 걸고 정말 죽을힘을 다한다.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게임은 금방 망한다.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올림픽 종목이 되려면 고정된 룰이 있어야하고 대회 개최에 대해 개발사 허락을 받아야한다. 개발사가 지적재산권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 그걸 포기한다면 많은 돈을 요구할 것이다.”

-개발사들은 e스포츠가 스포츠 분야에 포함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지적재산권을 포기하고 여러 제약까지 받으면서 스포츠로 가려는 게임 개발사는 드물 것이다. 지적재산권을 포기하고 고정된 룰이 생기는 순간, e스포츠는 거의 망한다고 봐도 된다.”

-광주, 부산, 대전에 국고를 투입해 지은 e스포츠 경기장들이 있다.

“경기장과 팀을 만들어 지역연고제를 실시하면 사람들이 많이 오리라는 생각은 단순하다. 지역별로 어떻게 차별화할지, 대회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산업은 어떻게 키울지 등을 연구해 한국형 e스포츠 성공모델을 만들어야한다.”

-정부가 e스포츠 육성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e스포츠는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산하 콘텐츠정책국 게임콘텐츠산업과에 들어가 있다. e스포츠를 게임으로 본다는 것이다. 반면, 스포츠게임은 2차관 산하에서 다루는 게 맞을 것 같다. 스포츠게임은 스포츠영역에서, 기존 게임은 그냥 게임 영역에서 알아서 하는 게 맞다. 다만 e스포츠를 종합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루는, FIFA같은 제3의 독립 기구가 있어야만 e스포츠를 산업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

-한국은 2012년 e스포츠 진흥법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장애인e스포츠도 활발하다.

“외국도 주목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진흥법에는 진흥을 선언했을 뿐 세부 법령을 포함해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너무 미흡하다. 정책이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거버넌스가 올바르게 구축돼야만 혼란,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현재 학부와 대학원에서 다양한 e스포츠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MZ세대는 어떻게 다른가

“MZ세대 뇌구조, 생활 패턴은 게임 그 자체다.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디지털기기, 게임에 물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오픈돼 있다. 게임적 사고, 행동, 판단, 적응에도 익숙하다. 학생들에게 방향성만 제시하고 소위 판만 깔아주면 모든 걸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수행한다. 오히려 내가 더 굳어져 있어 학생에게 배우기 힘들 정도다.”

-e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극복해야한다.

“지난해 밤 10시 청소년의 온라인 PC게임 접속을 막은 셧다운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게임하는 친구를 게임중독자, 심지어 사회 부적응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자녀가 게임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부모도 많다. e스포츠 개론서 같은 대학 교재조차 일천하다. 학생팀이 있어야 상무팀, 지역팀도 있을 수 있지 않나.”

-e스포츠를 산업으로 키우기에 앞서 사회적 동감대가 필요할 것 같다.

“경기장을 짓고 팀만 만든다고 성공할 수 없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거듭해야한다. 정부, 지자체도 동참해야한다. e스포츠를 제대로 모르면서 청사진을 미리 제시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이라도 겸손하게 배우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미래 비전을 촘촘하게 수립해야 한다.”

-한국 e스포츠가 가진 무기는 무엇일까.

“한국 선수는 세계 최고, 넘사벽이다. 지금도 외국 개발사가 만든 게임을 한국에 먼저 내놓고 한국 유저 평가를 기다린다. 한국에서 성공한 게임은 해외 어디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리그오브레전드도 뛰어나고 자발적인 우리나라 유저 덕분에 완성도를 높인 게임이다. 한국은 게임 능력뿐만 아니라 인성, 교양, 글로벌 시민의식 등을 겸비한 정상급 선수들을 육성해야 한다.”

-한국형 e스포츠가 세계무대에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 선수들은 뛰어나다. 또 우리는 e스포츠의 가능성을 제대로 선보인 경험이 있다. 디지털 미디어 활용도도 최고 수준이다. 최고 선수, 최고 리그 운영 경험, 다양한 미디어 활용법을 결합하면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