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갈마루지역아동센터에는 청소년 성장여행이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우리는 애초 계획대로 격주로 모여서 자전거 일주 계획도 세우고 제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세미나도 3차례 정도 하고 경비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도 했습니다. 제주도 자전거일주는 8월에 하지만 3월부터 경비 마련, 자전거일주 계획, 세미나 등의 준비를 하며 우린 이미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지역이 산골이라 바자회와 더불어 농사로 수익금을 마련하는 아이디어를 어렵지 않게 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쉬운 감자농사를 택했습니다. 더구나 감자는 7월에 수확해서 판매할 수 있으니 8월 여름방학 때 떠나는 ‘제주도 자전거일주’에 가장 적합한 농작물이었습니다.

시골에 살아도 평소 농사를 짓지 않는 아이들은 씨감자를 쪼개라고 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껍질을 깎고 있었습니다. 장사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던 아이들은 바자회 때 물건 파는 것도 정말 쑥스러워하고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하지만 또한 용기 내어 물건을 권해 보는 경험을 하며 아이들은 사실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걸 누가 사요?” 하던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자회 물건을 사가는 걸 보고 또 놀랍니다. 스마트폰 두드려 물건을 살 줄만 알았던 아이들은 재활용과 나눔을 통한 경제의 새로운 모습을 봤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땀흘려 농사를 짓고 바자회를 하고 개인용돈도 조금씩 모아서 자전거일주 경비를 마련했습니다.

감자를 팔고 바자회를 열어 경비를 마련하면서 저희는 감자값 이상의 후원금을 받았고, 너무 좋은 일 한다고 마을 분들이 대가없이 밭을 갈아주시고 감자밭 풀매는 아이들을 도와주시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지역에 가장 알맞은 수익창출 모델이자 지역에 우리를 알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주도 자전거일주’는 4일 동안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일정입니다. 자전거 일주 4일 동안 매일 ‘하루 이끔이’를 정했습니다. 그 이끔이가 그 날의 코스, 라이딩과 휴식 시간, 라이딩 속도 등을 정하며 전체를 이끌었습니다. 저희는 매일 일기를 쓰고 모여서 그날그날 소감을 나눴는데요, 그 하루평가 시간에 서로서로 격려도 하고, 그날을 성공적으로 팀을 이끈 이끔이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페달 돌리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자전거를 타기도 했습니다. 페달 소리와 파도 소리,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저희는 수행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시련도 있었습니다. 둘째 날 가장 체력이 약한 아이가 쉬는 시간에 말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거지요. 그 아이가 다시 기운을 차릴 때까지 저희는 모두 조용히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세쨋 날에는 또 생리를 시작했습니다. 제 아내에게도 한 번도 사주지 않았던 생리대를 직접 사서 봉지에 담아 주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당황했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가늠할 수도 없고 그냥 막막해서 이대로 자전거 일주를 접어야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선배 학생이 자기가 먹는 약이라며 주더군요. 어떤 아이들은 짐도 들어주고 화장실도 같이 가주고 아이들은 그렇게 말없이 그 아이를 챙겨주었습니다.

자전거 타이어 펑크도 두 번이나 났습니다. 어두워지는 저녁에 자원봉사와 아이들을 먼저 저녁 먹을 식당으로 보내고 혼자 자전거 수리를 해 주는 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 고치고 나서 어두운 길을 더듬어 아이들이 있는 식당을 갔더니 아이들이 너무 반가워하는 거 있죠. 젓가락도 챙겨주고 밥도 챙겨주고…. 센터에서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서비스였습니다.

무사히 완주를 마치고 마지막 숙소에서 아이들은 하나같이 “만약 출발하는 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난 절대 자전거 안 탈 거야. 사비를 털어서라도 비행기 타고 집에 갈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성취감으로 상기된 붉그레한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한 자전거 일주 기간 동안 친구들이 짐싸는 걸 도와주고 서로 배려하고 기다려주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고되지만 정직한 여행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이 자란 모습들입니다.

자전거 일주 하다가 팔이 부러져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다시 내려와서 그 지점에서 이어서 자전거 일주를 하고 있다고 말한 서울 아저씨는 한 가게에서 우리를 만났을 때 이렇게 얘기해 주셨지요.

“너희들 정말 대단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거야. 정말 대단해!”

“고맙습니다….”

인사하는 아이들의 입꼬리는 자꾸 실실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여행 가운데 만나는 사람들은 진심 어린 응원을 해주었습니다.

다녀온 아이들에게 무엇이 남았을까요?

자전거 일주를 마친 바로 그 순간, 너무나 힘들었던 나머지 뭔가 엄청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한 오후 무렵에 서 있는 자신을 보고 허탈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전거 일주 하는 동안 아이들이 뜬금없이 했던 질문, “선생님, 제가 왜 여기 있을까요?”

힘듦에 대한 푸념이었을지라도 이렇게 답을 모색하는 질문이 좋았습니다. 또한 다녀온 며칠 뒤 스멀스멀 차오르는 성취감….

“나 제주도 자전거 일주 한 여자야!”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며 얼굴은 뜨거운 태양에 선크림을 발라도 발그레하게 탔지만, 처음에는 저보다 다들 처지며 헉헉대고 따라왔지만, 온갖 짜증이 묻어 있는 표정으로 편의점에서 물을 마셨지만, 마지막날로 갈수록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저를 앞질러 가는 아이들은 그 뜨거웠던 여름날의 소나기 같은 땀이 어떤 의미일지를 성장하면서 더욱 차곡차곡 쌓아갈 것이란 걸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마음으로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을 함께해서 저도 참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