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수많은 이들이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들을 잊지 않고 예우하는 일은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책무다. 광복절 77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항일활동으로 주목 받는 기업들의 독립운동사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GS그룹은 LG그룹과 함께 독립운동에 나섰던 기업으로 손꼽힌다. 창업주인 효주 허만정 선생은 1897년 경상남도 진양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22세 나이에 그는 서울에서 3·1 만세 운동을 경험한다. 이는 허만정에 조국 독립을 위해서는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허만정 선생은 부친을 찾아가 학교설립과 계몽운동의 필요성을 설파해 토지와 자금을 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1925년 진주일신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한다. 또한 일본 도쿄를 방문해 현지 유학생회에 자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독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교육뿐이 아니었다. 허만정은 백산상회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독립운동 자금을 보탰다. 백산상회는 명분상으로는 곡물과 면직물, 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곳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군과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자금 공급처였다. 백산상회의 역할을 알아차린 1927년 조선총독부는 압수 조치를 했고 백산상회는 문을 닫게 된다.

허만정 선생은 해방 이후에도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일조했다. 국가 경제 성장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허만정은 연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와 협업해 우리나라 경제의 큰 축을 맡고 있는 LG그룹과 GS그룹의 전신을 세운다.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헌신은 현재까지도 GS그룹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독립운동가 중에는 의료인들도 많았다.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신준식 박사의 선친인 청파 신광열 선생은 1903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났다. 한의사 독립운동가인 그는 간도에서 3·1절 11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일본총영사관 기병대는 이에 무력 진압을 시작했고 당시 시위 주동자로 지목받은 신광열은 현장에서 경찰이 휘두른 경찰도에 맞아 옆구리에 30cm나 되는 큰 자상을 입었다. 이후 그는 간도일본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돼 경성 서대문 형무소로 수감됐다.

수감생활은 신광열의 독립운동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출소한 뒤 그는 ‘의술이 아닌 인술(仁術)을 펼친다’는 신념으로 비밀리에 부상을 입은 독립운동가들의 치료를 도왔고 솜, 옷 등 군수품과 독립운동 자금을 항일연합군부대에 조달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광복 이후에는 현 자생한방병원의 전신인 청파한의원을 개원한 뒤 1980년 작고까지 의료시설이 낙후된 마을로 17번이나 이사 다니며 지역의료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15일 국가보훈처는 신광열의 독립유공자 공훈을 인정해 대통령표창을 서훈했다. 그의 독립운동 정신은 약자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인술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자생한방병원의 설립 가치로 오늘날까지 많은 한의사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교보생명의 설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도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신용호뿐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아버지 신예범은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수탈에 항거해 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큰형 신용국도 영암 농민 항일운동에 참여하며 세 번에 걸쳐 옥고를 치렀고 훗날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에 서훈된다.

신용호는 어릴 적부터 폐병을 앓는 등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으나 독학으로 학업에 매진했고 스무 살에 중국으로 넘어가 사업을 시작한다. 그는 1940년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설립해 곡물 유통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는 이때 얻은 이익을 독립운동가들에게 지원했다. 특히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던 독립운동가 겸 시인 이육사를 만나면서 국가와 민족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이라는 교보생명 창립이념도 이 시기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기업가로서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숙고한 결과다. “교육이 민족의 미래”라는 그의 신념은 교보생명, 교보문고, 교보교육재단, 대산문화재단의 기틀이 됐다. 신용호는 2003년 향년 86세로 별세하기까지 국가와 국민을 위했던 인물로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