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호 수원 FC 단장이 22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수원시 슬로건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단장은 “축구단 단장으로 ‘수원FC를 새롭게, 시민을 신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매일 다짐한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많이 컸네. 앞으로 조금 더 고생하자.”
1983년 프로축구 출범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 활동한 예순을 넘긴 지킴이가 불혹의 K리그에서 건넨 말이다.
원년 선수부터 지도자와 행정가를 두루 거친 최순호 수원FC 단장(61)은 22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K리그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며 “관중 확보, 재정건전성 강화 등에서 조금 더 노력하면 더 좋은 리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단장은 1983년 포항제철 소속이었다. 최 단장은 “광운대 야간 4학년이었고 졸업 후 포항제철에 가기로 했다”며 “당시에는 학생 신분으로 프로에 뛰게 해줬다”고 회고했다. 당시 연봉은 2700만원. 리그 최고 수준인 2400만원을 넘는 ‘연봉킹’이었다. 최 단장은 “5개 팀이 전주, 춘천, 마산, 안동 등 9개 도시를 돌면서 주말에 경기하는 서커스단 같았다”며 “선수들끼리 무척 가까워 경기 후 팀과 상관없이 몰래 모여 술도 한잔씩 했다”고 회고했다.
직전 해인 1982년은 한국축구에 악몽이었다. 그해 스페인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아시아 청소년대회에서는 준결승에서 북한에 패해 세계대회 진출권을 얻지 못했다. 뉴델리 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는 일본에 패해 예선 탈락했다. 최 단장은 “일본전에서 너무 쉬운 찬스를 놓쳤다”며 “영원히 잊지 못하는 아픈 기억”이라고 말했다. 최 단장은 프로축구 원년 2경기(2골) 출전에 그쳤다. 그해 대표팀 소집에서 숙소를 이탈하면서 출전징계 처분을 받는 탓이다.
최 단장은 징계가 풀려 1984시즌 24경기(14골)에 나섰고 1987년까지 포항에서 뛴 뒤 럭키금성으로 옮겼다. 최 단장은 “1987년은 홈앤드어웨이가 처음 도입됐고 단일리그로 진행됐다”며 “K리그가 사실상 프로 형태를 갖춘 해”라고 평가했다. 최 단장은 1990년까지 럭키금성에 있다가 1991년 포항으로 돌아와 1년 만 뛰고 국내 무대를 은퇴했다. K리그 기록은 딱 100경기 출전(23골, 19어시스트). 대표선수로 자주 뽑히면서 프로경기는 많이 뛰지 못했다. 최 단장은 기록상은 A매치 96차례 출전이지만 상대가 프로팀인 경우를 합하면 여유로운 센추리클럽 멤버다. 최 단장은 1992년 프랑스 2부 로데스에서 1년 동안 뛰었고 2년 동안 프랑스 리그와 유스시스템을 직접 관찰했다.
최순호 수원 FC 단장이 K리그 출범 원년인 1983년을 회고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세훈 기자
최 단장은 1998년 포항 코치로 컴백해 2004년까지 포항을 이끌었다. 2006년부터 3년 간은 울산현대미포조선 전성기도 지휘했다. 최 단장은 “나는 끊임없이 리빌딩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며 “스쿼드가 좋아지면서 성적도 오르는 등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최 단장은 강원FC 창단 감독(2008~2011년)을 역임한 뒤 사실상 행정가 길을 걸었다. FC서울 미래기획단장으로 서울유소년아카데미(FOS) 출범을 이뤄냈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디비전 시스템, 골든에이지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데 토대를 놓았다. 2016년 말 포항 지휘봉을 다시 잡은 최 단장은 2019년 4월 경질됐다. 최 단장은 “2017년 7위, 2018년 4위로 성장했는데 초반 잠시 부진하다고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다”며 “스스로 ‘잘렸다’고 말할 정도로 일방적 경질이었다. 축구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라고 돌아봤다. 최 단장은 감독직을 내려놓고 2022년까지 기술 이사로 포항 유스시스템을 완성했다. 최 단장은 “포항하면 떠오르는 게 유스시스템이 아닌가”라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 단장은 최고 은인으로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을 꼽았다. 최 단장은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라’ ‘축구도 유스시스템이 중요하다’ ‘시스템이 좋은 회사가 성공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며 “내가 축구 행정가를 정말 잘하고 싶게 만든 조언들”이라고 말했다. 최 단장은 “내가 프랑스로 간다고 할 때도 ‘제대로 보고 와라’며 든든한 지원을 약속하셨다”며 “프랑스 시절은 한국축구를 위한 답을 찾은 소중한 시간”이라고 자평했다. 최 감독은 “얼마 전 프로축구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면서 마음에 흡족할 정도로 K리그가 정말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최 단장은 K리그와 함께 40년을 보낸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 선수가 아니라 바로 행정가를 했어야 했어. 사람들이 나를 뜬구름 잡는 이상주의자라고 하지만 지금 보니까 내 말이 맞았잖아. 어쨌든 내 축구인생 3막이 시작됐어. 조금 더 괜찮은 걸 직접 보여주기 위해 뛰어보자.”
단장 집무실에는 ‘수원을 새롭게, 시민을 빛나게’라는 수원시 슬로건이 걸려 있다. 최 단장은 “축구단 단장으로 ‘수원FC를 새롭게, 시민을 신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매일 다짐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