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전쟁이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패션산업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전체적인 공급망이 불안정해졌고, 유가 급등으로 물류비용도 상승했다. 특히 패션 제조업체들의 중요한 생산지 중 하나였던 우크라이나는 생산시설의 파괴 등으로 생산량이 줄고 노동력 부족 문제도 생겼다.

이러한 전쟁 상황은 분명 위기다. 하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도 피어난다. 어려움 속에서 많은 디자이너가 전쟁의 현실을 반영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예술을 사용하면서 혼란 속에서 영감을 찾았으며, 놀라운 복원력과 창의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전통의 영향을 받아 유니크하고 고품질의 의류를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자수와 같은 전통적인 수공예 기술에 능숙하다. 이에 현지에서 조달한 재료와 리소스를 사용하면서 전통적인 우크라이나 자수와 직물로 눈을 돌려 새롭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디자인에 접목했다. 또 전쟁 상황에서도 가능한 인터넷 환경을 활용한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으로 눈을 돌려 더 많은 고객들에게 다가가 자신들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작품을 전시하고 전 세계의 구매자 및 고객과 연결했다. 상황에 적응하고 창의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우크라이나 디자이너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은 물론 오히려 번창했다.

전쟁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패션 아이템들은 많다. 1차 세계대전 중 영국 군인들을 위해 개발된 트렌치코트는 영국의 전통 브랜드인 버버리에서 만든 고전적인 아우터 웨어로 유명하다. 영국 국방성은 버버리에 군인용 방수외투 제작을 의뢰했고, 창립자 토머스 버버리는 기존 개버딘(gabardine) 소재를 이용해 트렌치코트를 개발했다. 참호를 뜻하는 트렌치(trench)와 외투(coat)가 합쳐져 트렌치코트라는 말이 탄생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검증된 내구성과 기능성으로 인기를 끄는 가운데 셀럽들이 착용하면서 세계적 아이콘이 됐다.

또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공군 파일럿들을 위해 개발된 바머 재킷, 다양한 옷과 액세서리에 활용되고 있는 카모플라주 패턴은 적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이 밖에도 견고하고 튼튼한 디자인으로 군인들이 착용하던 컴뱃부츠, 무스탕, 카고바지, 마린룩 등 다양하다.

이러한 아이템들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재는 패션계에서 독특한 스타일과 기능성을 제공하는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역사와 기능성, 디자인이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더 많은 스타일의 옷과 액세서리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엄청난 어려움을 가져다주고 있다. 하지만 세계 디자이너들에게는 창의력이란 강력한 무기가 있다. 특히 역경에 직면했을 때 희망과 회복력을 불어넣는 창의력은 예술로 승화되곤 했다.

패션은 그저 외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인류가 얼마나 적응력이 강한지, 역경을 이겨내고 긍정적 변화를 창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희망을 찾아온 패션계의 끈기와 창의력을 응원한다. 아울러 그들이 앞으로 보여줄 멋진 작품을 기대해 본다.

■박광규는 누구?

이랜드그룹과 F&F애서 근무한 데 이어 EXR 중국의 임원을 거쳐 NEXO 대표이사를 지냈다. 현재는 서울패션스마트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패션산업에 30년 종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상공인 지원, 청년 인큐베이팅, 패션 융복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국 Gerson Lehrman Group의 패션 부문 컨설턴트이기도 하다.